조선시대의 출산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저조한 출산율로 국가 소멸 위기론마저 불거지고 있는
상태여서 출산 장려책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붇고 있는데,
다산다사 시대였던 조선시대의 출산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26년 (세종 8). 왕은 관청의 계집종이 아이를 낳으면 백일간의 유가를 주도록 규정하고 이를 형조에 지시하였습니다.이때 왕의 나이 29세. 젊은 청년의 나이였지만 노비의 출산에 휴가일을 정하여주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왕이었으니 그의 폭넓은 백성사랑을 익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재위 12년 (1430) 10월에는 출산휴가 뿐 아니라 산전휴가까지 신경써주었으니 그동안 7일로 규정되어있던 기간을 늘려 30일로 재조정하여 산전 30일. 산후 100일. 합이 130일간을 출산휴가로 법적조치해주는 획기적인 조치가 내려졌고 이에 그치지 않고 그 남편에게도 30일간의 출산휴가를 허하도록하는 조치를 내리시니 아마도 세계최초의 출산장려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출산을 위해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세종대왕은 남자의 출산휴가를 형조에 지시했는데 여종이 임신을 하거나 산후 100일 안일 경우 만 30일을 쉬게 해줬는데 출산과 산후조리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여성의 출산휴가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남편에게도 출산휴가를 주었습니다.
또 다둥이에게는 금전적 지원으로 셋 이상 낳으면 아들 , 딸 상관없이 콩 10석을 하사하기도 앴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출산율은 양반 여성 1인이 평균 5.09명을 출산했고 이 가운데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남성은 1.25명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라 아들이 있어도 더
많은 아들을 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