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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무리하게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1956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3선에 출마할 수 있게 하죠.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돌연사로 이승만은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장면이 부통령에 댕선도, 무소속 조봉암 후보가 라이벌로 등장합니다.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과 자유당은 반공을 앞세워 장면을 피습하고,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진보당과 조봉암을 제거하는 등 독재 정치를 합니다.
그런데 1960년 4대 대통령에 이승만 정부는 오래전 부터 부정선거를 준비하였습니다.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선거 직전 사망하면서 이승만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 되었지만 85세의 고령인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 정권이 민주당에 넘어갈 것을 우려해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죠. 결국 자유당 이기붕 부통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3.15 부정선거가 4.19혁명을 촉발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