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작가가 어쩌다 부조리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요
알베르 카뮈라는 작가의 이방인 페스트 반항하는 인간 등 책들을 읽어보면 인간의 부조리에 대한 내용이 엄청 많이 나타나는데 작가의 생애와 연관성이 많이 있는걸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렵게 자랐고 알제리 대학까지 갔었으나 폐결핵으로 인해 중퇴하게 됩니다. 생계를 위해 많은 일을 하다가 평생의 스승 장 그르니에를 만나 철학 학사 학위 과정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시몬 이에와 결혼했는데 그녀가 모르핀 중독이어서 그것을 돕기 위해 결혼했지만 그녀의 주치의과 불륜 관계인 것을 알고는 이혼하게 됩니다.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알제리인과 유럽인들의 차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여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 이후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추천으로 알제리 공산당으로 옮깁니다. 카뮈는 인민당과도 관계를 하고 있었는데 공산당과 인민당의 갈등으로 싸울 때 공산당과 입장을 달리하여 공산당에서도 제명됩니다. 이후 좌익 성향의 신문사에서 문화기사와 르뽀를 썼고, 일간지 파리스와에서 근무하며 <이방인> 외 다수 작품을 씁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저항하기 위해 참전을 신청하였으나 또다시 폐결핵으로 프랑스 군대의 입대를 거절당합니다. 이후 일간지 파리스와에서도 해고를 당했고, 프랑스 리옹으로 돌아와 수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랑신 포르와 결혼하여 오랑으로 가 교사를 하였고, 이후 결핵치료를 위해 프랑스 알프스에 머무르며 <페스트>를 씁니다. 이후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파리로 돌아가게 되었고 장 폴 샤르트르와 친해지게 됩니다.
더 많은 삶의 이력이 있지만 이것만 보아도 그의 작품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카뮈는 이민자의 자녀로 프랑스 사회에서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속하기 위해 공산당도 가입하고 군대로 가고자 하고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제명되고 거절되면서 그 이유를 자신의 처지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에 사회의 이방인으로서의 느끼는 여러 부조리들을 <이방인>이라는 작품에 반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계속 그를 괴롭혀왔던 폐결핵과의 싸움을 하며, 그 과정에서 병에 걸린 사람들을 대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당시 많은 전염병 등으로 유럽이 어려웠던 시기를 거쳤으므로, <페스트>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냉혹한 현실을 꼬집고자 했을 것입니다.
1명 평가안녕하세요. 신필욱 전문가입니다.
《이방인 L'Étranger》이라는 휘대의 명작 히트작을 저술한 프랑스 작가 Albert Camus는 1913년 생으로 아무래도 부모님 세대부터 본인 모두 1차 2차 세계대전 알제리 독립전쟁 등 큰 전쟁들을 겪는 시대를 살아가는 숙명을 만난 것이 그 영향이라 하겠습니다.
1명 평가안녕하세요. 박에녹 전문가입니다.
알베르 카뮈는 20세기 초 알제리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기를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식민지 사회의 불평등, 전쟁의 참혹함, 죽음과 고통이 일상화된 현실을 직접 체험했고, 이런 경험은 인간 존재가 근본적으로 부조리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인간은 학문과 인간관계, 사랑, 목표의 성취, 욕망 추구 등의 여러 방법으로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세상에 내재한 무의미와 충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방인', '시지프 신화', '페스트' 같은 작품에서 부조리를 핵심 주제로 삼아, 삶의 무의미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탐구했습니다. 카뮈가 부조리를 주제로 작품은 쓴 것은 식민지 국가에서의 삶의 경험과 전쟁 체험에서 비롯된 실존적 고민이었으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을 탐색하려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