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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이 왜 한번에 실시되지 못했나요?

대동법이 최초로 시행될 때부터 전국으로 확산되기까지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데요.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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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 대동법은 광해군 재위 시기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습니다. 대동법은 가호 단위로 토산물을 거두는 것을 토지 단위로 쌀, 무명, 삼베, 동전 등으로 거두었습니다. 따라서 토지가 없는 농민들은 환영하였지만 지주들의 반발이 컸습니다.

    지주들은 전세 이외에도 대동세를 납부하여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증가하였습니다. 따라서 지주들의 조세 부담에 대한 저항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숙종때까지 100년이 걸렸습니다.

  •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

    대동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에서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토지를 가진 자에게 세금을 거두는 것이었기에 사실 가진 자에게 더 세금을 거두는게 합리적이면서, 국가의 안정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기득권층이 불법적으로든 합법적으로든 토지를 대량으로 갖고 있었고 이들의 밑에서 소작농들이 일을 하고 있었기에 토지가 없는 빈농들에게는 대동법이 환영 받을 수 있었지만 기득권 양반층에게는 불만이 있을 수 있는 제도 개혁이었기 때문이죠. 특히나 방납이라 해서 해당 지역에 나오지 않는 특산품을 대신 납부해주고, 이후 그만큼의 가치로 곡식 등으로 받는 것이 있었는데 이때 방납업자들이 원래의 가치보다 더 높은 값으로 수익을 거두고 이를 양반들에게 뒷돈으로 찔러주니 더더욱이 대동법이 시행되기 어려웠죠.

  • 안녕하세요. 조유성 전문가입니다.

    ✅️ 대동법은 초기에는 한양, 경기 쪽에서만 시행되었고, 추후 전국으로 확대되었는데 당시 전국으로 바로 확대할 수 있을만한 행정력이 되지 못했고, 대동법 관련해서 '이해관계자 집단'이 존재했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대돗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우선 기득권 세력인 양반 지주와 수취 계층의 반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대동법은 기존의 공납제에서 각 지방 백성들이 특산물을 직접 바치던 방식을 폐지하고, 이를 쌀로 통일하여 납부하도록 한 제도인데, 이로 인해 기존에 공납을 매개로 이익을 얻던 관청의 하급관리, 지방 양반, 대소 수취층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잃게 되었기 때문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또한, 지역마다 경제적 여건과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 상태가 달랐기 때문에 일괄적인 전국 시행이 어려웠습니다. 대동법은 일정한 화폐 경제와 곡물 유통망이 뒷받침되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는데, 일부 낙후된 지역은 그 기반이 부족해 시행이 늦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