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의천이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했다고 하는데 설명해주세요.
의천이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고 천태종을 개창하여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통합하였다는데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통합하였다는데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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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속장경(續藏經) 간행, 천태종 개립(開立) 등을 통해 고려 전기(前期) 불교의 교학진흥과 사상적 통일을 기하고 불교의 국가적 기여에 힘썼던 고려의 고승(高僧). 고려의 왕권강화를 위해 호족세력의 비호 아래 있던 오교구산의 여러 종파를 통일시키려 했다. 고려 문종의 제4왕자로 태어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은 11세에 출가하여 영통사(靈通寺)의 왕사(王師) 난원(爛圓)에게 득도(得度)하고 화엄교관(華嚴敎觀)을 배웠다. 30세 때인 선종(宣宗) 2년(1085)에 송나라에 들어가 고덕애학(高德礙學)을 방문하고 명산고적을 두루 찾았다.
국왕과 태후의 간절한 청에 의하여 오래 머물지 못하고 송나라로 떠난 지 14개월만에 귀국했는 데, 장소(章疏) 3천여 권을 갖고 왔다. 의천은 송에 머물던 짧은 동안에 고승 50여 명을 만나보고 법요(法要)를 논의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유성(有誠)ㆍ정원(淨源)ㆍ선총(善聰)과 화엄을, 종간(從諫)과 천태교학(天台敎學)을, 원소(元炤)ㆍ택기(擇其)와 율(律) 및 정토(淨土)를, 종본(宗本)ㆍ요원(了元)ㆍ회련(懷璉)과 선(禪)을, 천길상(天吉祥)과 범학(梵學)을 각각 논강소통(論講疏通)하여 송의 제학(諸學)을 모두 섭렵하였다.
귀국한 뒤에 의천은 흥왕사(興王寺) 주지로 있으면서 제자를 양성하는 한편, 요(遼)ㆍ송ㆍ일본 등에서 4천여 권의 장소(章疏)를 다시 수집, 구입하고 국내의 고서(古書)를 모아 그 목록으로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을 편집하였다. 이는 경(經)ㆍ율(律)ㆍ논(論), 삼장(三藏)의 정본 외에 그 주석서인 장소(章疏)만을 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한 것으로 이러한 부문에서는 최초가 된다.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두고 이 목록에 의하여 경서를 간행하니, 이것을 곧 고려 속장경(續藏經)이라 한다.
그 뒤 선암사(仙岩寺)와 흥원사(興圓寺)를 거쳐 해인사(海印寺)에서 심신을 정양하고 있었는데, 숙종이 즉위하여 간청하자 다시 흥왕사(興王寺)에 돌아와 강학(講學)하였다. 숙종 2년(1097) 2월에 국청사(國淸寺)가 낙성되자, 그해 5월에 제1세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天台敎學)을 강(講)하니 모여드는 학자(學者)가 무려 1천 명을 넘었다. 여기서 비로소 천태종(天台宗)이 일종(一宗)으로 그 개립(開立)을 보게 되었다. 숙종 6년(1101)에 47세로 세상을 떠나니, 시호를 대각국사라 하였다.
저술로는 『신집원종문류』(新集圓宗文類),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석원사림』(釋苑詞林), 『성유식론단과』(成唯識論單科), 『팔사경직석』(八師經直釋), 『소재경직석』(消災經直釋) 등 10여 부 3백여 권이나 되었는데, 현존하는 것은 『교장총록』(敎藏總錄) 3권과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 같은 책 『외집』(外集)의 낙장본(落張本)과 『원종문류』(圓宗文類) 및 『석원사림』(釋苑詞林)의 잔편(殘篇)이 있고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의 서문이 있다.
의천은 본래 화엄종의 승려였던 만큼 화엄 계통의 제자와 함께 천태종 개립 이후의 천태종계 제자들이 많아 그의 법을 이었다. 의천의 사상을 한두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천태종 개립을 통해 보면, 크게 ①교관병수(敎觀並修) ②선교(禪敎)의 융합 ③호국이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입적하기 전부터 화엄교관(華嚴敎觀)과 천태교관(天台敎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참구(參究)했다. 그리하여 송에 가서는 화엄학의 대가이면서 천태학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은 유성(有誠)과 더불어 화엄의 현수(賢首)와 천태의 지의(智)의 교판(敎判)사상 및 양종(兩宗)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또한 중국 천태종의 고승(高僧)이었던 자변종간(慈辨從諫)으로부터는 천태교학에 대해서 깊은 지해(知解)를 얻었다.
따라서 고려에 돌아온 의천은 이 두 사상을 포용해서 당시 불교계의 시류(時流)를 제거하려고 의도했던 것으로, 그것이 곧 천태종 개립의 태동이었다. 천태교학에서는 교관병수(敎觀並修)를 강조하고 있는데, 곧 이론(敎相)과 실천(修行)의 겸행을 말한다. 그리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ㆍ삼관오교(三觀五敎)의 수행을 역설한다. 여기서 일심삼관의 수행이란 화엄법계의 관문으로서 실천수행과 이론적인 교리조직을 말한다. 삼관은 화엄경에 법계의 진리를 증독키 위하여 일심으로 닦는 3종의 관계(觀界), 즉 진공관(眞空觀)ㆍ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ㆍ주편함용관(周遍含容觀)을 가리키며, 또 영락본업경(瓔珞本業經)에서 다루어지고 천태종에서 계승ㆍ발전시킨 공(空)ㆍ가(假)ㆍ중(中), 삼관을 말한다.
그리고 오교란 화엄의 오시교판(五時敎判)을 말하는데, 의천은 이를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천태종의 사교와 대등하다고 보았다. 결국 삼관오교는 교상(敎相)과 이의 실천, 즉 교관병수(敎觀並修)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는 천태종을 개립한 의천의 근본사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천태종 개립에서 볼 수 있는 의천의 또 다른 사상은 교(敎)와 선(禪)의 융희(融會)라고 말할 수 있다. 의천은 어느 일종(一宗), 일교(一敎)에 편중하지 않고 모든 사상을 융회ㆍ통합하려 했다.
이러한 각종 사상의 융회 노력은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특히 천태종 개립으로 당시 사상적으로 대립해 있던 선과 교를 융회하려 하였다. 또한 이같은 불교의 사상적 귀일(歸一)을 통해 고려불교를 개혁코자 했으며, 이를 그대로 호국불교적 이념으로 전개해가고 있다. 불교 교단의 발전과 함께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는 의천의 이같은 호국이념은 그의 독특한 입전지법(立錢之法)의 주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출처 : 철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