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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안경곰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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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김개남은 왜 즉결처분이 된 것인가요?

동학농민운동 당시에

김개남과 전봉준은 같은 날 체포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봉준의 경우는 재판을 거친 기록이 있는데 같은 날 체포된 김개남의 경우는

왜 재판없이 즉결처분이 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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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전봉준은 공식적인 재판 절차를 거쳐 사형되었으나, 김개남은 재판 없이 즉결처분(총살)되었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봉준은 항복 후 붙잡힌 인물이었으며, 그동안의 활동이 비교적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지도자로서 상징성이 컸기 때문에, 정부는 그에게 재판을 통해 정식으로 죄를 묻고 형을 집행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조선 정부는 그를 재판에 넘기면서 동학운동을 국가 반란으로 규정하고,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했습니다.

    반면, 김개남은 전봉준보다 과격한 무력 투쟁을 주장했던 인물로, 1895년 3월, 전봉준보다 약 두 달 늦게 체포되었습니다.

    김개남은 재차 봉기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체포될 당시에도 군사적 저항을 한 정황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정부는 그를 체포 즉시 반란 재시도 세력으로 간주하여 재판 없이 즉결 처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김개남은 단순히 과거 농민운동 지도자가 아니라 당시에도 여전히 위협적인 반란 주동자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조선 정부와 일본군은 신속하게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전봉준은 정치적 상징성을 이용하여 공권력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재판 절차를 거쳤고, 김개남은 즉각적인 위협 요소로 간주되어 사전 재판 없이 즉결 처분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