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갈레아초 치아노 백작은 제2차 세계 대전내내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 외교업무를 맡다가 전쟁이 이탈리아에 불리해지자 장인어른인 무솔리니에 반대하여 그를 합법적으로 실각시키려 했다. 갈레아초와 국가 파시스트당 최고평의회 의장 디노 그란디는 1943년 7월 24일 파시스트당 긴급 최고평의회를 소집, 무솔리니 탄핵 결의안을 19대 7로 통과시켰고, 다음날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탄핵안을 추인하고 무솔리니를 해임, 체포하였다.
그러나 탄핵 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9월 12일, 오토 스코르체니가 지휘하는 독일 국방군 특공대가 체포된 무솔리니를 구출하여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수장으로 옹립했고, 수도 로마는 독일군에게 장악되었다. 사위가 자신을 배신한 것에 격분한 무솔리니의 명령으로 독일군에게 반 파시스트 혐의 및 반역으로 체포됐으며 합법적으로 사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