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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로맨틱한발발이14223.07.20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양대군은 아버지 세종대왕을 도와서 나라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알고있는데요.

김종서를 죽이고 왕권을 장악하는 계유정난을 일으킨 배경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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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계유정난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유정난은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불과 2년 만에 급서하고 단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면서 촉발되었다고 합니다.

    세종 때부터 급격히 신장된 신권은 단종의 즉위와 함께 더욱 강해졌으며,

    실제 문종은 유명으로 황보인·김종서 등 대신들에게 어린 단종의 보필을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문종의 뒤를 이은 단종은 즉위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세종과 문종의 유명을 받든 고명대신 김종서가 조정의 인사권 및 정권과 병권을 쥐고 섭정을 하였습니다. 수렴청정을 통해 왕실의 중심점 역할을 해야 할 대비와 대왕대비가 부재한 상황에서, 세종의 영특한 아들들은 세종대에 각종 정치, 문화 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각자 만만치 않은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과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세력이 가장 강성했으며, 조정의 신료와 왕실, 심지어 환관, 나인까지도 이들의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동생 임영대군 그리고 한명회, 유응부 등을 우군으로 두었고, 안평대군은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세 아들과 금성대군의 지지를 받으며 수양과 대립했습니다. 이들이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김종서와 그를 따르는 신하들은 또한 막강한 세력을 이루며 대군들을 견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은 자신의 단명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에게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왕세자가 등극했을 때 그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합니다. 1452년 남지가 병으로 좌의정을 사직한 후 좌의정은 김종서, 우의정은 정분이 맡았습니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1453년 문종의 유탁을 받은 삼공 중 지용을 겸비한 김종서의 집을 불시에 습격,그와 그의 두 아들을 죽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린 단종(당시 12세)이 즉위 하면 왕권이 약화되고 신권이 강화되는 것을 염려해서 라고 할수 있는데, 본인이 왕이 되고 싶은 이유가 강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