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붕당의 분화는 사림들이 제한된 관직과 경제적 이권을 놓고 척진정치의 잔재 청산과 학파적 성향을 놓고 분열된 것입니다. 직접적 계기는 1574년 신진사림 김효원이 이조 전랑으로 임명되자 심의겸이 김효원 윤원형의 식객 출신이라는 이라고 반대했습니다. 또한 다음해 김효원이 이조정랑으로 재임중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후임자로 천거되자 김효원이 다시 외척이 이조 벼슬을 차지한다고 반대하면서 충돌했습니다.
이조전랑의 비록 5품 정도의 낮은 품계이지만 문관 인사권을 쥐고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따라서 이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주도권이 결정되기 때문에 극력히 대립한 것입니다.
기성사림 심의겸이 서인, 신진사림 김효원이 동인으로 대립하면서 동서 붕단이 생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