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전투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의 침략을 예상하지 못하고,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조선군은 일본군의 조총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무기와 전술을 갖추지 못했고, 군사 지휘도 미숙했습니다. 용인전투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의 조총에 대한 공포와,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사기가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사기 저하가 조선군의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용인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1592년 7월 13일 경기도 용인에서 이광과 윤선각이 이끄는 전라도 이광 4만 전라도방어사 곽영 2만+충청도 윤선각 각 1만 5천으로 7-8만명의 남도근왕군이 겨우 1600명의 왜군에게 크게 패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한국사 5대 패전(칠전량해전 쌍령전투 현리전투 주필산전투) 중 하나입니다. 이는 전략과 전술없이 적의 숫자가 적다고 얕잡아 보고 섣부른 행동을 한 이광 등의 무능력이 낳은 참사입니다. 훗날 권율은 황진과 함께 와신상담하여 행주대첩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