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황제의 친일 행위가 실제로 있었나요?
이번에 대구에서 순종황제의 동상 철거를 두고 논란이 있고,
그 동안에도 순종의 친일 미화 논란이 상당히 많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친일 행위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종의 아버지인 고종이 일제의 강요로 헤이그 특사 사건을 벌였지만 각국의 정부에서 이미 을사늑약을 승인했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독자적인 외교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회의 참석은 좌절되었습니다.일제는 이를 조약 위반으로 규정하고 고종에게 양위를 강요하였으며, 고종은 어쩔 수 없이 황위를 순종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즉위의 과정이 순리에 따른 것이 아닌 일제의 강제력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후 친일적인 인사들이 내각에 기용되는 가운데 갑오개혁이 계속 진행되었고, 이를 타계하기 의하여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함에 따라 순종 역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습니다.1년 후인 1897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어 하여 황제에 올라 대한제국을 선포함에 따라 순종은 황태자로, 세자빈은 황태자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친일 행위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단정할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조선 귀족 작위를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종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거나,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등의 논란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왜곡과 친일미화논란 등이 불거졌던 대구 순종황제동상이 7여년 만에 철거되었습니다. 70억이 넘는 혈세와 행정력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1909년 순종이 남순행 중 대구를 방문한 것을 기념해 일대에 테마거리를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어갓길에 숨겨진 구국 항일정신을 다크 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미래지향적인 역사교육 공간으로 만들계획이었으나 순종의 남순행이 일제가 반일감정을 무마하기 위해 순종을 대구 부산 등지로 끌고 다닌 치욕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순종이 친일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나 일제강제기였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을 지역사회와의 협의도 없이 추진함으로써 혈세를 낭비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