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근로자들의 처우개선 얘기가 나오면 항상 언급되는 전태일이라는 분은 어떤 일을 하셨었나요?

근로자들의 처우개선 얘기가 나오면 항상 언급되는 전태일이라는 분은 어떤 일을 하셨었나요? 오래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던데;;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경북 대구시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1954년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주하여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녔다. 1963년 대구에서 살다가 다시 1964년 상경하여 1965년부터 서울 평화시장의 의류제조회사에서 시다, 재단사 등으로 일하였다. 1969년 평화시장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근로기준법 위반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노동청에 진정을 하였지만, 노동자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69년 9월부터 1970년 4월까지 건축 노동자로 일하다가, 1970년 9월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노동조건 실태 설문 조사를 하고, 정부, 언론 등에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후 다락방 철폐, 노동조합 결성 지원, 노동조건 개선 시위 기획 등을 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유명무실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하고 분신 항거하였고, 그 날 밤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자살 이후 평화시장에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어 민주노조운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의 유언에 따라 청계노조와 노동운동에 헌신하였다. 또한 전태일의 분신 자살은 정부의 산업화과정에서 희생 당하던 노동자의 삶이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1970년대 이후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계천 피복 노동자였던 전태일 열사는 13-14시간에 이르는 중노동에도 라면값 정도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노동3권 보장을 주장하면서 분신으로 저항한 인물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노동환경의 변혁을 꾀하고자한 대표적인 노동운동가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