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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12

1982년 학생들이 부산미문화원을 불을 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1982년 대학생들이 부산에 있는 미 문화 오늘 방화하여 사회적 논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부정적인 방화를 한 이유는 무엇인지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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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화의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고신대 학생들이 미국 정부가 5·18 광주 학살을 용인했다고 비판하며 부산미문화원을

    방화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부산 지역 대학생들이 부산 미국 문화원에 불을 지른 것으로 반미운동의 성격을 띄는 방화 사건인데요. 당시에는 미국이 한국을 마음대로 흔든다는 것에대한 반감이 많은 시기였습니다. 특히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를 방조하고 광주학살을 용인한 것을 비판하면서 반감이 더 거세졌던 것으로 압니다.

    방화사건 당시 대학생들은 "미국은 더 이상 남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고신대 학생들이 미국 정부가 5.18 광주 학살을 용인했다고 비판하며 부산미문화원을 방화했습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시기 미국이 신군부의 군대 동원을 용인했다는 정황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1981년 2월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지지와 공고한 한미동맹관계를 확인하고 제 5공화국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화운동세력에게 미국 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한다는 비판의식을 확산시켰습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고신대 학생들인 문부식, 김은숙, 김화석, 박정미 등은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를 방조하고 광주학살을 용인한 것을 비판하면서 부산미문화원에 잠입, 방화하고 미국은 더이상 남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고신대 학생들이 미국 정부가 5.18 광주 학살을 용인했다고 비판하며 부산미문화원을 방화한 사건 입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시기에 미국이 신군부에 군대동원을 용인했다는 정황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1981년 2월 전두환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의 지지와 공고한 한미동맹관계를 확인하고 제5공화국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화운동세력에게 미국 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한다는 비판의식을 확산 시켰습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고신대 학생들은 문부식, 김은숙, 김화석, 박정미 등은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를 방조하고 광주학살을 용인한 것을 비판하면서 부산미문화원에 잠입하여 방화하고 “미국은 더 이상 남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땅에서 물러가라”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 했습니다. 그러나 방화과정에서 부산미문화원 안에서 책을 보던 동아대생 장덕술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미국이 전두환과 신군부세력의 군사독재를 용인하고 지원하는데 대한 항거 였습니다.


  • Podiesi 님 안녕하세요. 1982년 학생들이 부산미문화원에 불을 지른 이유와 그 배경에 대해서 궁금하시군요.

    1982년 3월 15일, 대학생들은 부산에서 미국문화원을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불안과 미국에 대한 높은 반감이 깔려 있었습니다.

    1980년 5.17 광주 항쟁 이후 한국 국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정부에 대한 반감을 키웠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학생들은 강식당 투쟁과 같은 정부 반대 활동을 벌였으며, 미국은 정치적 이익과 관계를 위해 정부에 지원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대학생들은 미국에 대한 반감이 높았고, 이러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 전반의 미국에 대한 반감과 인권 문제가 논란거리로 떠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해서,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불안과 미국에 대한 반감이 그 배경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궁금증이 해소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