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잠이나
잠이나

단종비의 집안은 끝내 복권되지않았나요?

단종의 부인의 집안은 계유정난으로 풍비박산이 나게되는데 조선이 망하는때까지도 단종의 부인 집안은 원래대로 복권되지않았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활달한파리매77
      활달한파리매77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단종의 부인 집안은 계유정난 이후 조선이 망하는 때까지도 원래대로 복권되지 못했습니다.

      단종의 부인은 신숙주의 딸인 정순왕후입니다.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폐위되고 유배를 당하자, 정순왕후는 아버지와 함께 유배를 떠나야 했습니다. 정순왕후는 유배지에서 10년 동안을 보내다가 145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순왕후의 아버지 신숙주는 계유정난의 주모자로 몰려 사형을 당했습니다. 신숙주의 처와 자녀들도 모두 귀양을 갔고,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습니다. 신숙주의 자녀들은 1468년에 세조가 죽고 성종이 즉위하면서 풀려났지만, 과거에 응시하거나 관직에 진출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결국, 단종의 부인 집안은 계유정난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걸었고, 조선이 망하는 때까지도 원래대로 복권되지 못했습니다.

      단종의 부인 집안이 복권되지 못한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계유정난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단종은 세종의 손자로, 조선의 왕위를 정당하게 계승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유정난으로 인해 단종은 폐위되었고, 세조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단종의 부인 집안이 복권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세조는 계유정난의 주모자로, 단종의 부인 집안은 세조의 정치적 적대 세력으로 여겨졌습니다. 세조는 단종의 부인 집안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신숙주와 그의 아들 숙번은 사형을 당했고, 다른 자녀들은 귀양을 갔습니다. 신숙주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고, 단종의 부인 집안은 과거에 응시하거나 관직에 진출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셋째, 조선 사회는 계유정난 이후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훈구파는 세조의 왕위를 정당화하는 세력이었으며, 사림파는 단종의 복위를 주장하는 세력으로 대립했습니다. 이러한 대립은 단종의 부인 집안이 복권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