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아이언캐슬
아이언캐슬

청나라 후기 유행했던 고증학이란 어떠한 학문이었나요?

청나라 후기에 청나라에서는 고증학이라는 학문이 유행했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청나라 후기 유행했던 고증학이란 어떠한 학문이었나요? 우리나라의 실학과도 비슷했는지도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에서 유행한 양명학에 반발해서 청나라초에 나타난 유학의 학풍으로, 고염무에 의해 제창되었습니다.

    성리학의 공리공론과 독단적인 해석을 비판하고 실사구시적인 학문을 주장했으며 경사 등을 엄밀한 고증에 의해 연구하는 훈고학적 방법론을 채택했으나 청조의 탄압을 받으면서 실용적인 학문경향은 약해지고 점차 경서의 고증에만 치우치게 되었으며 그 대상은 경학, 사학, 지리학, 금석학, 음운학, 문자학, 천문역학 등에 걸쳐 있으며 염약거, 호위 등에 의해 대성되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에서 유행한 양명학에 반발해서 청나라초에 나타난 유학의 학풍.


    고염무(顧炎武)에 의해 제창되었다. 성리학의 공리공론과 독단적인 해석을 비판하고 실사구시적인 학문을 주장했으며, 경사(經史)등을 엄밀한 고증에 의해 연구하는 훈고학적 방법론을 채택했다. 그러나 청조의 탄압을 받으면서 실용적인 학문경향은 약해지고 점차 경서의 고증에만 치우치게 되었다. 그 대상은 경학·사학·지리학·금석학·음운학·문자학·천문역학 등에 걸쳐 있으며, 염약거(閻若璩), 호위(胡渭) 등에 의해 대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유교경전에 대한 연구방법으로 채택되었으며, 역사·지리학 등의 연구에도 이러한 학문태도가 널리 활용되었다. 특히 김정희에 의해서 절정을 이루어 성리학적인 연구방법을 비판하고 실사구시와 실증적인 학문태도를 강조했다. 그러나 조선에 도입된 고증학은 학파를 이루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출처 : 한국고중세사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