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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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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사교클럽인 낙랑구락부의 실체는?

안녕하세요.해방사에 대해 관심사가많은데요.미군정시절에 낙랑구락부라는 사교클럽은 누가 만들었으며.단순한사교클럽인지 아님 다른 용도가잇엇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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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방직후 사교클럽인 낙랑구락부의 실체가 궁금한 것 같습니다.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전쟁기 존재했던 고급 사교클럽입니다. 모윤숙은 이승만의 지시로 김활란과 모윤숙이 6.25 전쟁이 지속 중이던 시기 1951년에 만들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군정기에 설립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며, 낙랑클럽에 소속된 인물 중 하나가 김수임인데 김수임은 6.25 전쟁 직전에 리강국 사건으로 총살되었습니다.

    모윤숙은 8.15 광복 전후에 스캔들에 연루된 바 있습니다. UN군 고급 장교 접대용으로 낙랑클럽이라는 사교 단체를 조직한 후 자신을 논개에 비유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낙랑구락부'는 일제강점기 후반에 설립된 친일 성향의 여성 단체로, 회장은 김활란, 부회장은 황신덕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조선과 만주국 일본 귀족 및 고관 부인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시국강연회 개최와 국방헌금 모금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1944년에는 회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조선군 보도부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방 직후 1945년 김활란이 총재, 모윤숙이 회장으로서 주도한 낙랑 클럽을 조직했다고 합니다. 이 클럽은 영어를 잘하는 여성들로 구성된 비밀 조직으로 주한 외국인을 상대로 고급 외교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낙랑클럽의 활동은 미국 언론에도 보도 되었다고 밝혀졌습니다. 방첩대 문서에 따르면 1952년 12월 24일 자 미국 <데일리 팔로 알토 타임스>는 이 클럽 여성들이 '낙랑걸'이나 '마타하리' 등으로 불린다면서 이들을 "자유당의 접대부"로 표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