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른들이 써오던 병풍의 유래나 쓰임새는 어떻게 되나요?
시골집에 가면 항상 병풍이 있었는데요.
옛날 사극도 보면 병풍이 너무 아름답고 모든 집에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런 병풍은 벽도 아닌데 왜 항상 쓰였던걸까요?
병풍의 유래나 쓰임새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풍은 본래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그려 뒷벽을 장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예술의 목적으로 생겼지만 점차 제례를 위한 도구로 변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풍(屛風)은 바람을 막거나 무엇을 가리거나 혹은 장식용으로 방 안을 장식하기 위해 치는 물건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접이식 병풍은 한나라 시대 중국에서 발명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주나라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병풍의 초기 형태는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도안식으로 그리거나 수놓아 뒷벽을 장식하였다는 부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병풍의 초기 형태를 보여 주는 유물로 중국 후난성 창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왕퇴 1호분 출토 「칠병풍」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하나의 넓은 판 위에 천마를 그려 놓은 것으로, 부의와 같은 통병풍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통병풍 형태의 병풍이 조선시대에 사용되었으며, 『국조오례의』 「도식」에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또 1901년 『영정모사도감의궤의 「도설」에 묘사된 ‘오봉병’ 중 통병풍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풍은 바람을 막거나 무엇을 가리거나 혹은 장식용으로 방 안을 장식하기 위해 치는 물건입니다.
한국은 대대로 온돌난방의 건축구조로 집의 바닥을 중심으로 난방을 했기 때문에 벽쪽에 웃바람이 들수밖에없는데, 병풍은 이를 막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또 보통 제사, 잔치를 지낼때 뒷쪽에 펴놓는 경우가 많았고 전통적인 장례 당시에는 집에서 치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시신을 보통 병풍 으로 가리고 병풍 앞에 위패를 포함한 상을 차리고 향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풍(folding screen)은 바람을 막거나 무엇을 가리기 위하여, 또는 장식용으로 방 안에 치는 물건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방형으로 짠 나무틀에 종이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이나 자수, 글씨 등을 붙여 펴고 접을 수 있는 것이었고 2폭에서 12폭까지 짝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2폭병풍을 특히 곡병풍, 또는 가리개라 하고, 머리맡에 치는 것을 머리병풍 또는 침병이라고 했습니다. 주로 조선 시대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병풍은 한국인의 삶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생활용구였습니다.
병풍(屛風)’은 집안에 장식을 겸하여
바람(風)을 막기(屛) 위해 둘러치는
물건이기도 했지만, 그 위에 그림이나
글씨, 수(繡)를 곁들였기 때문에
벽면이나 공간을 꾸미는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풍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장황 형식 중 하나이다. 병풍의 초기 형태는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도안식으로 그리거나 수놓아 뒷벽을 장식하였다는 부의(斧扆)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병풍의 초기 형태를 보여 주는 유물로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왕퇴 1호분 출토 「칠병풍(漆屛風)」이 있다. 이 작품은 하나의 넓은 판 위에 천마(天馬)를 그려 놓은 것으로, 부의와 같은 통병풍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통병풍 형태의 병풍이 조선시대에 사용되었으며, 『국조오례의』 「도식(圖式)」에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또 1901년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의 「도설」에 묘사된 ‘오봉병(五峯屛)’ 중 통병풍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남아 있다.
병풍(屛風)의 ‘병(屛)’자는 ‘시(尸)’와 두 손을 나타내는 ‘병(幷)’이 결합된 문자이며 ‘시’자는 시신을 뜻하는데 고대에는 우상의 뜻으로도 해석되었다. 그 뜻은 ‘은폐하다’ ‘앞을 가리다’ ‘울타리 치다’ ‘겁내게 하다’ ‘물리치다’로 해석할 수 있다. 『논어』에서도 ‘시’자를 예배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병(屛)’자는 제사상이 병풍 앞에 차려지고 그 앞에 사람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전하는 병풍의 형식 중 가장 고식(古式)을 보여 주는 예로 16세기에 제작된 「소상팔경도팔곡병(瀟湘八景圖八曲屛)」이 있다. 이것은 조선 중기에 유행하던 소상팔경을 주제로 8폭 형식으로 제작된 병풍으로, 16세기 산수화 병풍의 장황 형태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현재 일본 다이간지[大願寺]에 소장되어 있으며, 다이간지의 승려였던 손카이[尊海]가 조선에 왔다가 1539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간 작품이다. 병풍 뒷면에 손카이가 써 놓은기록을 통해 병풍의 제작 시기와 전래 내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병풍의 높이는 1m 정도로, 작품의 사방으로 붉은색 · 흰색 · 쪽색의 얇은 띠를 둘러 장식하였으며, 각 폭마다 2개씩 모두 16개의 짧은 다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의 주변을 2㎝ 정도의 띠로 둘러 주었다. 작품을 감싸는 듯한 띠는 보통 감색 또는 쪽색 비단이나 종이로 꾸며 주는데 이러한 쪽색은 병풍은 물론, 족자 등의 장황 재료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색상이다. 감색은 쪽을 발효시켜 얻는 색인데, 쪽은 색이 쉽게 변하지 않으며, 충해도 예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풍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장황 형식 중 하나이다. 병풍의 초기 형태는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도안식으로 그리거나 수놓아 뒷벽을 장식하였다는 부의(斧扆)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병풍의 초기 형태를 보여 주는 유물로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왕퇴 1호분 출토 「칠병풍(漆屛風)」이 있다. 이 작품은 하나의 넓은 판 위에 천마(天馬)를 그려 놓은 것으로, 부의와 같은 통병풍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통병풍 형태의 병풍이 조선시대에 사용되었으며, 『국조오례의』 「도식(圖式)」에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또 1901년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의 「도설」에 묘사된 ‘오봉병(五峯屛)’ 중 통병풍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남아 있다.
병풍(屛風)의 ‘병(屛)’자는 ‘시(尸)’와 두 손을 나타내는 ‘병(幷)’이 결합된 문자이며 ‘시’자는 시신을 뜻하는데 고대에는 우상의 뜻으로도 해석되었다. 그 뜻은 ‘은폐하다’ ‘앞을 가리다’ ‘울타리 치다’ ‘겁내게 하다’ ‘물리치다’로 해석할 수 있다. 『논어』에서도 ‘시’자를 예배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병(屛)’자는 제사상이 병풍 앞에 차려지고 그 앞에 사람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풍은 바람을 막거나 무엇을 가리거나 혹은 장식용으로 방 안을 장식하기 위해 치는 물건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접이식 병풍은 한나라 시대 중국에서 발명되었습니다.
한국은 대대로 온돌난방의 건축구조로 집의 바닥을 중심으로 난방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벽쪽에 웃바람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병풍은 이를 막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