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업적 중에서 준천사는 어떤것인가요?
영조의 업적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준천사라는 것이 있던데, 이는 무엇이며 어떠한 기능을 하는 곳이었나요?
이것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760년(영조 36)에 서울 성내의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위하여 설치한 관청입니다.
당시 서울의 개천(지금의 청계천)은 홍수피해가 막심해 조정에서 대규모의 준천역사(濬川役事)를 실시키로 하고, 준천사를 신설하여 도제조(都提調:정1품) 3명, 제조(提調:종2품 이상) 6명, 도청(都廳:정3품 당상관) 1명, 낭청(郞廳:정7품) 3명을 관원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겸직으로, 도제조는 현직 의정(議政), 제조는 병조판서 ·한성판윤 ·훈련대장 ·금위(禁衛)대장 ·어영(御營)대장과 비국(備局) 당상관에서 1명을 뽑아 보하였다. 도청은 당상관인 어영천총(御營千摠)이 겸하고, 낭청은 동 ·서 ·남 3도참군(參軍)이 겸하였습니다. 그 뒤 준천사는 부속기관으로 주교사(舟橋司)를 두어 선박 ·교량 ·조운(漕運) 등의 사무도 관할하였다. 준천사는 본래 문관(文官)의 관청이었으나, 1865년(고종 2) 무관의 관청으로 이속되었다가 그 사무가 청계천 공사에 치중된다고 하여 82년 한성부(漢城府)에 통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준천사 [濬川司]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760년(영조 36) 2월 개천(開川: 현 청계천) 준천 후 준천사를 설치하였다.
관서는 중부(中部) 장통방(長通坊)에
있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760년 개천의 준설을 마친 뒤 준천의 효과를 지속하고 또다시 오물 등으로
수로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며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이를 위한 별도
기구의 창설이 요구되었다.
그 결과 준천사가 설치되었으며,
준천사는 이후 개천의 준설 이외에도
서울의 사산(四山) 즉 백악산·인왕산·
목멱산·낙산의 나무 보호를 담당하였다.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준천사는 조선 시대 중기의 현직 법사였던 최현환(崔鉉煥)의 호입니다. 최현환은 선경(禪境)에 빠져 수행하는 도중,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수행지인 조계산 중턱에 선녀가 나타나 최현환의 병을 고치고, 불교의 제사를 지키면서 잘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준천'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습니다.
이후, 최현환은 영조 8년(1732년)에 ‘준천사’라는 이름으로 사찰을 건립하였습니다. 이 사찰의 건립은 당시 매우 중요한 업적으로, 조선의 종교문화 발전과 불교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또한, 최현환은 사찰을 건립하면서 사찰 부지 내에 식량을 생산하고 화훼를 재배하여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의 사회복지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러한 최현환의 업적으로 인해, 준천사는 조선시대 불교 문화의 대표 사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조 36년 1760년에 서울 성내의 치산치수를 위하여 설치한 관청입니다.
당시 서울에 홍수 피해가 막심해 조정에서 대규모 준천역사를 실시키로 하고, 준천사를 신성하여 도제조 3명, 제조 6명, 도청 1명, 낭청 3명을 관원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