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활달한거북이38
활달한거북이3823.02.14
고려, 조선 시대의 응방은 무엇을 하던 곳이었나요?

현재 발생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과거에 있고,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어 역사에 대해 학습하고 있는데, 고려, 조선 시대에 응방이라는 곳이 있던데,

응방은 무엇을 하던 곳이었나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1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려, 조선시대에 매의 사냥과 사육을 위해 두었던 관청을 응방이라고합니다

    응방의 설립목적은 몽골의 해동청 조공요구로인해 두었다고합니다

    응방의 주요활동과 업무는 매 사냥과 사육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응방은 고려, 조선시대에 매의 사냥과 사육을 위해 두었던 관청입니다.

    응방의 제도는 몽골이 고려를 복속하게 한 뒤 몽골에서 들어와 그들이 조공품으로 요구하는 해동청을 잡고 길러 몽골에 보내기 위해 설치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응방의 제도는 몽고에서 들어온 것으로, 고려와 조선 때 매의 사육(飼育)과 매사냥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 우리 나라에 처음 설치된 때는 1275년(충렬왕 1)이고, 1281년 응방도감(鷹坊都監)으로 제도화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매사냥은 수렵과 목축을 업으로 하는 북방 민족과 중국 대륙에서 일찍부터 행해졌다고 하지요. 특히 매사냥을 즐긴 몽고인들에게 매는 중요한 재산이었다고 합니다. 고려의 응방은 몽고의 매 요구에 대한 대책으로 설치되었다는 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몽고의 제실(帝室) 및 귀족 사회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던 매사냥의 풍습을 좋아한 충렬왕의 기호에서 설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응방(鷹坊)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매의 사육과 매

    사냥을 맡은 관청이다.

    응방의 제도는 몽고에서 들어왔으며

    응방의 관리는 고려인이 맡았다.

    충렬왕 9년(1283년) 응방도감이

    설치되어 이를 관할하게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