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시대까지 일본은 왜 인신매매시장이 형성되엇나요
일본은 전근시대시대까지 즉 최근까지 인신매매시장이 상당히 형성되었다고 하는데요
왜 일본에서는 이런 시장이 형성되었던것인지 궁금합니다
중세 일본에서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이들을 노예로 매매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 10만명 이상을 노예로 끌고와 나가사키, 히라노 등지에서 매매했습니다. 그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에 유곽을 허가하고, 에도 막부도 에도에 유곽을 설립하여 인신매매를 간접적으로 허용했습니다. 또한 하층민 여성이 생계 유지를 위해 성매매에 종사하였으며, 국가는 방임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신매매 시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일본의 인신매매시장이 형성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란도리" 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란도리란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혼란 중에 취한다’는 뜻으로, 전투 이후 승리한 병사들이 적의 민간인, 재산, 식량 등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사로잡아 노예처럼 다루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행위는 단순한 전리품 수집을 넘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인간 사냥으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특히 농민과 상인, 여성, 아이들까지도 대상이 되었습니다.
란도리는 주로 전투에서 승리한 측이 적군의 영토를 점령한 직후 이루어졌습니다. 성이나 마을이 함락되면, 병사들은 민가를 돌며 가축, 쌀,옷, 귀중품은 물론, 사람들까지 끌고 갔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당시에도 비인도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전국시대는 법과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에 란도리는 실제로 널리 행해졌고, 오히려 병사들의 전투 의욕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장려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다이묘들은 병사들에게 란도리를 일정 부분 허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얻게 되는 약탈품을 보상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즉, 란도리는 일종의 전쟁 ‘보너스’였던 셈입니다.
란도리는 단순한 약탈을 넘어서 인신매매 시장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사로잡은 민간인들은 다른 다이묘에게 팔려가거나, 인근 도시나 성 밑의 장터에서 노예처럼 거래되었습니다.
결국, 전국 시대의 란도리는 일본 역사상 가장 어두운 단면 중 하나로,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이 무시되고, 전쟁이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