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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0

망이 망소이의 난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망이 망소이의 난이 무엇인가요?

망이 망소이의 난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며

그당시에 시대상황은 어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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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역행자
    역행자23.05.20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망이, 망소이난은 1176년(명종 6) 정월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가 무리를 모아 산행병마사(山行兵馬使)를 자칭하고 봉기해 공주를 함락시켰습니다. 당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정부는 우선 지후(祗候) 채원부(蔡元富)와 낭장(郎將) 박강수(朴剛壽)를 보내 선유(宣諭)하였습니다. 그러나 난민들이 응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하였습니다.


    이에 대장군 정황재(丁黃載)와 장군 장박인(張博仁) 등에게 3천명의 군사를 주어 난을 진압하도록 했지만, 난민에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정부는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시켜 현령(縣令)과 현위(縣尉)를 파견하고, 난민을 위무(慰撫)하게 하는 등 회유책을 썼습니다.


    이때에도 망이 등은 이에 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산현(禮山縣)을 공략해 감무(監務)를 살해하고 충주(忠州)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정부는 다시 대장군 정세유(鄭世猷)와 이부(李夫)를 남적처치병마사(南賊處置兵馬使)로 삼아 대대적인 토벌을 전개하였습니다.


    이것이 주효해 1177년 정월에는 망이·망소이가 강화를 요청함으로써 난이 일단 진정되는 듯하였습니다. 정부는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 처형하지 않고 오히려 곡식을 주어 향리로 호송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달 뒤에 망이·망소이 등은 재차 봉기해 가야사(伽耶寺: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德山에 있음)를 침구했고, 3월에는 홍경원(弘慶院: 천안 稷山에 있었음)을 불태우고 개경까지 진격할 것임을 내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망이 등이 홍경원의 주지를 시켜서 개경 정부에 전달한 글에 의하면, 이들이 다시 봉기하게 된 이유는 난이 진정된 이후 정부에서 다시 군대를 보내 그들의 가족들을 가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아주(牙州: 지금의 牙山)를 함락시키고, 청주를 제외한 청주목(淸州牧) 관내의 모든 군현을 점령하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남적에 대해 강경책을 펼쳐, 같은 해 5월에 충순현에서 명학소로 강등시키고 군대를 파견해 이들을 토벌하였습니다.


    그 결과 난민들은 큰 타격을 입어 6월에는 망이가 사람을 보내어 항복을 청해왔고, 7월 망이·망소이 등이 정세유에게 붙잡혀 청주옥(淸州獄)에 갇힘으로써 1년 반 동안의 반란이 완전히 진정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망이망소이의 난은 고려 명종 때 일어난 농민봉기입니다.

    신분제의 타파를 목적으로 충청도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망이, 망소이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집권기에 일어난 하층민의 봉기입니다..

    망이, 망소이의 난은 공주 명학소라는 특수 행정구역에서 발발했는데요,

    이 특수구역 중에는 소 외에도 향과 부곡이 있었는데..

    이는 마을 단위로 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 마을이 향,부곡,소라는 명칭으로 격하가 되어서

    생기는 행정구역입니다.

    향, 부곡, 소의 주민들은 천민이 아니라 양민 신분인데

    이들의 생활은 천민들과 다름없이 형편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향, 부곡, 소의 양민들에겐

    다른 지역에 사는 일반 양민들에게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수 있는 자유도 없었고,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려 후기 무신정권때 일어난 망이, 망소이의 난을 계기로

    통일신라때부터 유지되오던 향, 부곡과 고려시대 때 새로 생긴 소라는 행정구역이

    점차 소멸되어가고, 조선시대에는 완전히 없어집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망이,망소이의 난은 고려 명종때 신분제 타파를 목적으로 충청도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과 소민들의 봉기 입니다.

    망이와 망소이가 거주하던 소는 고려의 일반 행정구역인 주,군,현과 다른 특수행정구역으로 농경 대신 특산물 제작과 공납에 특화되어있었고 소에서는 지역 특성에 따라 금, 은, 철, 명주, 종이, 기와, 숯, 도자기, 차 등을 생산했습니다.

    소의 주민들은 천민과 다를바 없는 대접을 받으면서 각종 부담은 일반 군현민보다 무거워 이들의 불만은 컸습니다.

    난의 주동자는 소 출신으로 다만 지방관이 파견되었던 중심지를 함락시키려면 소수의 소 주민만으로 어려웠을 것이며 공주목의 일반 군현민들도 가세한 것으로 추정하며 당시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은 지배층의 수탈과 토지 겸병 등으로 농지에서 이탈하는 사례가 많았고 이는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이후 외관의 문무교차제가 실시된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수 있습니다.

    무신들은 문신 대신 외관직을 독점하려 하나 벼슬길이 막힐 것을 우려한 문신들의 저항이 컸고 문무반의 싸움이 전개되는 가운데 지방 행정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백성에 대한 수탈도 커지고 이런 이유로 고려 중기 유망 농민이 난을 일으키는 사례가 자주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