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이익의 종손인 이가환과 이가환의 외조카인 이승훈과 인척관계였으며, 이벽이 정약용의 누나와 결혼하면서 처남 매부 관계가 되었습니다. 성균관 유생 시절 때 성균관 우수학생들을 모아 상을 주는 행사에서 정조는 정약용을 처음 보고 이후 마음에 들었는지 자주 불러 시를 짓도록 했습니다. 이로 인해 정조의 눈에 들게 되어 중앙으로 진출했습니다
정약용은 어릴 적부터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1783년(정조 7) 증광 생원시에 3등 7위로 입격하였습니다. 이후 1789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습니다. 이후 이익의 학문을 접한 후 성호학파에 입문 하였으며, 이가환, 이승훈 등과 함께 근기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노론과 남인의 갈등 속에서 관직생활이 평탄치 않았으며, 정조 사후 천주교 탄압으로 인해 유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1782년, 서울에 집을 마련하여 정착 한 후 과거공부에 전념하였고 1783년에 세자 책봉 경축 증광시에 합격하고 회시로 생원이 되었다. 22세에는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갔는데, 매달 치르는 시험과 열흘마다 치르는 순시(旬試)에 매번 높은 성적으로 뽑혀서 책과 종이와 붓을 상으로 하사받으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