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4년 이자성의 농민군이 베이징을 포위하자, 명의 주력은 산해관에서 청군을 막고 있어 수도를 지킬 병력이 부족했습니다. 성 안의 장수와 태감들이 차례로 투항하면서 방어는 무너졌습니다. 숭정제는 대신들을 소집했는데, 응답한 신하가 거의 없었고, 환관 왕승은만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밖으로 피신시키고, 황후와 후비들에게 자결을 명한 뒤 자금성 뒤 경산에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는 남경으로 천도, 선해관군을 소집, 이자성과 협상하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남천을 검토했지만 신하들이 책임을 피해 명확히 찬성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도 도망치는 꼴이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탈출할 시간을 놓쳐 자결을 선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