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종과 정종이 각각 박술희와 왕식렴으로 대표되는 측근의 세력기반에 의지해 왕권을 부지한 반면, 광종은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바탕으로 왕권을 확보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광종은 주변세력의 영향력 없이 자신의 왕권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었으며, 태조 이래 열세에 놓여 있던 왕권을 호족세력보다 우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왕식렴은 신라 출신 후고구려 귀족이자 고려의 왕족으로 태조 왕건의 백부 왕평달의 아들이며 왕건의 사촌동생입니다.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정종 즉위를 도운 공로로 광국익찬공신에 봉록되었습니다. 왕신과 왕육의 형이며 왕희순과의 사촌간입니다. 본관은 개성 시호는 위정입니다. 정종 즉위 후 왕규의 난을 미리 예견한 정종이 수비대장인 욍식렴에게 사전에 미리 연락하여 난을 평정케 하였으며 왕식렴은 난을 평정하여 왕규를 갑곶으로 귀양보냈다가 죽이고 무리 300명을 죽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