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어떤식으로 기록되어 있나요?
해상왕 장보고는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에 모두 기록된 인물이라고 하는데요.
각 나라에서 장보고는 어떤식으로 기록되어 있을까요?
기록에 차이점이 있을까요?
장보고에 대해 우리나라의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해상 무역을 주도하며,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한 인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무왕을 도와 즉위를 도왔지만 문성왕과 사돈 관계를 맺지 못해 반란을 일으킨 인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은 당나라 시인 두목의 번천문집과 신당서에 '인의의 사람'으로 칭하며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합니다. 즉 무역을 활발히 하고, 전산촌에 법화원을 세워 신라인들의 정신적 중심지로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승려 엔닌과 관계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일본후기>, <속일본기>에 장보고의 도움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역을 주도한 인물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완도에 거점을 마련하여 한, 중, 일 해상 무역을 중개했던 장보고는 이런 배경으로 인해 중국과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무역업이다보니 장보고에 대해 거상의 이미지가 강했고 장보고의 이름을 보물(보)에 높을(고)로 바꿔 써서 민간에서는 재물신으로 추앙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해외 학자인 하버드대학 교수 라이샤워는 장보고에 대해 연구를 하고는 '해상 상업제국의 무역왕'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장보고가 신라의 왕위다툼에도 나설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