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가 북경에서 요한 아담 샬 폰 벨을 가까이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청나라가 명나라를 점령한 후에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만났다고 하는
요한 아담 샬 폰 벨 신부를 형제처럼 여겼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천주교인을 가까이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현세자는 귀국 전 북경에 머무르다 아담 샬을 만나게 되고 둘은 친교를 맺으며 학술과 종교세 대해 많이 배우면서 외국인이 가진 식견에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황비묵의 목격담에 따르면 소현세자와 아담 샬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뜻을 같이 하는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담 샬은 천주교가 바른 길임을 연달아 이야기하고, 세자도 자못 듣기를 좋아해 자세히 묻곤했으며 세자가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자 아담 샬이 선물로 그가 지은 천문, 산학 , 성교정도 등의 여러 서책과 지구본, 천주상을 보냈고 세자는 이를 받고 손수 한문으로 편지를 써 감사의 뜻을 밝히며 천주상을 벽에 걸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그 이유는 아담 샬로부터 서구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 였으며, 사실상 조선이라는 국가가 '소중화 사상'에 빠져 기술, 과학의 발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아버지 인조의 미움을 사게 되는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심양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두 사람은 순수한 우정을 나눴습니다. 소현세자와 아댬샬은 서로의 필요성에 따라 교분을 심화시킨 사례입니다.
소현세자는 천문학 등 서양 학문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왕성했으며, 조선의 발전에 서양 학문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또한 아댬샬은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개교(改敎)를 전교 계획을 세웠는데, 최우선 후보국이 조선이었습니다. 소현 세자가 조선의 차기 왕이라는 사실엥 조선 개교에 희망을 가지고 소현 세자와 친분을 쌓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자호란(1636) 때 볼모로 잡혀와 있던 조선의 소현 세자와 사귀면서 전문 지식과 기독교 교리를 전달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소현 세자가 의도적으로 요한 아담 샬 폰 벨과 만남을 가진 이유의 관심사는 신앙이 아닌,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서양 학문이었습니다. 1645년에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귀국시 중국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사제를 데리고 가려고 했던것을 보면 로마 가톨릭에 대해 아주 무관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시도는 결국 중국 교회의성직자 부족 문제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