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삽시간에 왜군이 북진할 수 있었던 것은 관군의 제승방략 체제의 허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의병과 이순신 장군이 주도한 수군의 활약으로 왜군의 북상은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의병이 관군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재지 사족의 리더십 덕분입니다. 곽재우 같은 의병장은 지역의 유지인 양반 유생으로 평소부터 마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향촌에는 동계와 같은 자치 조직이 운영되었는데, 이는 정부 명령없이도 빠르게 의병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에서는 임금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충의 사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병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유격전으로 유리하게 전술을 수행하면서 왜군을 괴롭힐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