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그윽한그늘나비286
그윽한그늘나비286

홍길동전을 집필한 허균은 왜 광해군에게 능지처참을 당했나요?

1594년(선조 27년)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597년(선조 30년) 다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을 집필한 천재작가 허균은 왜 광해군에게 능지처참이라는 극형을 당했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허균은 광해군 때 권신인 이이첨의 수족으로 영창대군 제거 이후 소성대비의 폐서인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활약한 인물입니다.

    유언비어를 살포하고 사람들을 모아 불궤를 도모했다가 일이 커지고 발각이 나자 이이첨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보이며 수감 중 부하들에게만 심문이 이루어졌으며 본인에게는 제대로 된 심문이 없었고, 이이첨이 의금부에 드나들며 허균을 안심시키다가 창졸간에 끌어내 처형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허균의 죄는 기준격의 전후 소 중에 나타난 흉모의 곡절과, 김윤황을 사주하여 흉격을 화살에 매어 경운궁 가운데 던지게 한 것과, 남대문의 흉방에 대해 하인준이 허균이 했다고 이른것, 몰래 승도들을 모아 난을 일으키려고 한것, 산에 올라가 밤에 소리쳐 도성의 백성들을 협박하여 나가게 한것, 유구의 군대가 원수를 갚으러 와서 섬에 숨어있다고 한설 등이 모두 허균이 한것이라고 전후의 흉모에 대해 윤황과 하인준이 일일이 승복한 죄였으며 허균이 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한양 서쪽 저자거리에서 처형당했습니다.

    허균은 심문 받는 줄 알고 나왔다가 자신이 죽는다는걸 알자 경악하여 광해군에게 아뢸 말이 있다고 하나 신하들이 욕을 퍼부었고 한마디도 못하고 끌려나가야했고 자신이 역적이라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하자 동의 못한다고 버티지만 억지로 서명하고 사지가 찢어집니다.

    후, 광해군의 반교문을 발표하기를 성품이 짐승 같은 역적 허균을 잡았으니 대사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