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제가 신으로 여겨지고 일본의 궁극적 인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거의 힘이 없었던이 복잡한 정치 구조는 19 세기에 외국 사자들과 대리인들을 크게 혼란 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미 해군 제독의 메튜 페리가 1853 년에도 베이 (Edo Bay)에 와서 미국 항로를 개항하도록 강요했을 때 미국 대통령이 가져온 편지는 황제에게 전달되었는데 그러나 편지를 읽은 것은 장군의 궁정이었고,이 위험하고 지루하고 새로운 이웃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했던 것은 쇼군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로 치면 고려 시대의 최충헌이나 정중부 등과 같은 군벌 세력의 수장 이라고 보면 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