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 이후에 국제 정서가 어떻게 바뀌었나요?
일본이 강행적으로 진주만 공습을 함으로써 어떤 나비 효과를 불러 일으켰나요?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함으로써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주만 공습 이후 여러 사후평가들을 통해 12월 7일 개전 당시의 공훈을 사 진주만에서 총 15명의 명예훈장 수훈자가 탄생했고, 그중 10명이 사후 수훈이었다.
아래는 사후 수훈자 명단이다.
아이작 C. 키드(Isaac C. Kidd) : 공습 당시 해군 준장으로 제1전함부대 사령관이었다. 공습 당시에는 함에 머물지 않았지만, 공습을 인지하자마자 기함 애리조나로 복귀하고 함대를 수습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나 진주만 비극의 상징이 된 애리조나 탄약고 유폭과 동시에 실종, 사실상 전사했다. 사후 소장 추서.
프랭클린 반 바르켄버그(Franklin Van Valkenburgh) : 공습 당시 해군 대령으로 전함 애리조나의 함장이었다. 키드와 마찬가지로 애리조나에서 최후까지 지휘를 하다가 역시 실종, 사실상 전사했다.
머빈 S. 베니온(Mervyn S. Bennion) : 공습 당시 해군 대령으로 전함 웨스트버지니아의 함장이었다. 공습으로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자신의 치료보다는 최후까지 함과 부하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죽는 순간까지 지휘에 전념했다.
프랜시스 S. 플래허티(Francis C. Flaherty) : 공습 당시 해군 소위로 전함 오클라호마에서 근무 중이었다. 연거푸 어뢰를 맞은 오클라호마가 전복하고 전원 퇴함명령이 내려졌을 때, 플래허티는 전우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스스로의 탈출을 포기하고 정전으로 암흑이 된 포탑 속에서 손전등으로 탈출로를 알려주어 수많은 장병들을 살렸다. 플래허티는 끝내 탈출하지 못해 실종되었고, 그의 헌신덕에 살아난 이들의 증언으로 명예 훈장이 추서되었다. 플래허티의 시신은 2019년이 되어서야 확인되었다.
제임스 R. 워드(James R. Ward) : 전함 오클라호마 소속 수병. 플래허티와 함께 포탑 속에서 다른 동료들의 탈출을 끝까지 돕다가 정작 본인은 탈출하지 못했다.
에드윈 J. 힐(Edwin J. Hill) : 전함 네바다의 갑판사관. 공습이 시작되자 도끼를 들고 바다로 다이빙하여 부두로 헤엄쳐 올라간 뒤 그 도끼로 정박 중인 네바다를 묶고 있던 훗줄들을 모조리 내리찍어 네바다가 항해에 나서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공습 당시 전함들 중 조금이라도 항해한 함선은 네바다가 유일하다. 그렇게 훗줄을 다 끊은 후 네바다가 출항하자 다시 바다로 다이빙하여 헤엄쳐 함에 복귀, 원래 업무로 복귀하여 네바다를 노리는 일본군의 공습에 맞서다가 전사했다.
허버트 C. 존스(Herbert C. Jones) : 전함 캘리포니아의 소위. 캘리포니아에 대한 첫 공격 직후 연기 속으로 들어가 질식 위험에 처한 전우들을 구해냈으며, 이후 자신의 보직이 아님에도 주인없이 방치되어 있던 대공포를 붙잡고 공격해오는 일본기들에 맞섰다. 탄약이 떨어지자 자원하여 탄약고로 내려가 탄약들을 옮기기 시작하다 공습에 피탄되어 탈출하지 못하고 전사했다. 그를 어떻게든 데리고 탈출하려던 전우에게 배가 언제 침몰할 지 모르니 나까지 살리려하지 말고 어서 탈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토머스 J. 리브스(Thomas J. Reeves) : 전함 캘리포니아 소속 통신부사관으로 위의 허버트 C. 존스와 함께 불길과 연기 속에서도 죽을 때까지 탄약고에서 손으로 탄약을 대공포좌로 옮겼다.
로버트 R. 스콧(Robert_R. Scott) : 전함 캘리포니아 소속 기관부사관. 캘리포니아가 피격되어 침수되기 시작할 때 그의 업무구역인 에어 컴프레셔가 있는 곳도 침수되어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모두들 탈출하자고 외쳤지만 스콧은 이곳은 내 관할이다. 전우들에게 끝까지 공기를 공급해야 한다.며 탈출을 거부했다.
피터 토미치(Peter Tomich) : 전함 유타 소속 기관부사관. 유타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그는 다른 기관실 요원들을 모두 탈출시킨 후 최후의 순간까지 함에 전력을 공급하는 작업을 계속 했다.
아래는 생존 수훈자 명단이다.
존 W. 핀(John W. Finn) : 미 해군항공대 카네오헤 만 비행장에서 근무하던 항공병기사. 기습으로 주기된 기체들이 모두 파괴당했음에도, 멀쩡한 기관총들을 꺼내어 긴급 거치, 2시간여에 걸쳐 일본군들과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 치열한 교전으로 왼팔 어깨 등에 심각한 총상을 입고 공습이 끝난 후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응급치료만 한 후 당일 저녁에 기지에 복귀하여 기지를 정비하는 데 합세, 모두를 놀라게 했다. 1942년 9월 항모 엔터프라이즈 함상에서 니미츠로부터 직접 명예훈장을 수훈받았다. 2010년 타계했는데, 진주만의 명예훈장 수훈자 중 가장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사무엘 G. 푸쿠아(Samuel G. Fuqua) : 해군 소령으로 전함 애리조나에 소속되어 있었다. 애리조나 탄약고 유폭 이후 살아남은 최선임 장교로서 잔존 인원들을 지휘하여 화재확산을 막고 생존자 구출 및 퇴함을 지휘하여 추가 피해를 막은 공로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대서양 방면에 배치되었다가 1945년에 태평양으로 돌아와 필리핀, 보르네오 전역에 종군하였고 1987년 타계했다.
잭슨 C. 패리스(Jackson C. Pharris) : 전함 캘리포니아에 배속된 병기사로, 대공사격을 위한 탄약이 부족하자 침수된 구역을 잠수해 들어가 탄약고에서 탄약을 꺼낸 후 다시 침수된 구역을 잠수해 통과하여 탄약을 전달했다. 이하 반복. 그 와중에도 침수구역때문에 탈출을 못하는 동료들 몇 명을 탈출시키는 공로를 세웠다. 그러나 잠수 과정에서 유출된 기름을 흡입하는 바람에 폐에 기름이 들어가 약 2년여를 병원에 있었다. 퇴원 후 일선에 복귀하여 순양함 세인트 폴에서 복무했으나 이번에는 가미카제 공격으로 등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1966년 타계했다.
도널드 K. 로스(Donald K. Ross) : 전함 네바다의 기관부사관. 상술한 에드윈 J. 힐의 공로로 네바다가 출항한 이후 함에 지속적으로 동력을 공급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그가 근무하던 전방 발전기실이 열기와 연기로 가득차자 부하들을 모두 탈출시킨 후 홀로 남아 모든 작업을 수행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그가 걱정되어 온 전우에 의해 구조되어 의식을 차렸으나 이번에는 후방 발전기실로 가서 네바다가 좌초할 때까지 동력공급 업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시력을 일시적으로나마 거의 잃었다. 치료 이후로도 계속 네바다에서 근무하여 주로 유럽 전역에서 종군했다. 1992년 타계했다.
캐신 영(Cassin Young) : 해군 대령. 수리함 USS 베스탈의 함장. 일본군의 공습으로부터 배를 지키기 위해 용맹하게 싸웠으며, 애리조나가 탄약고 폭발로 침몰하면서 베스탈에 그 여파가 미치는 바람에 바다에 빠졌지만 자력으로 수영을 해서 베스탈에 복귀한 후, 베스탈을 구하기 위해 애리조나로부터 떨어질 것을 명령했고 그 조치로 함을 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훈장을 받았으며, 공습 이후 1942년 11월 9일에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의 함장이 되었으며 11월 13일에 벌어진 과달카날 해전에서 전사하고 해군십자훈장을 추서받았다. 진주만 공습 때 생존한 명예 훈장 수훈자 중 유일하게 종전 이전에 죽은 인물.
이들 15인 외에 역시 공습 당일 미드웨이에서 공습을 당하는 와중에도 지휘부를 재편성하고 부하들을 피신시키다가 전사한 조지 H. 캐논(George H. Cannon) 해병 중위까지 총 16명을 태평양전 최초의 명예훈장 수훈자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