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은 어떤곳인가요?
조선시대에 정조대왕 재임 6년인 서기1782년에 강화도에 설치하였다는데 강화도에 설치된 외규장각은 어떤 역활을 하던곳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782년 문예부흥의 임금, 정조는 왕실 관련 자료를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왕실도서관을 세웁니다. 이것이 외규장각이었습니다. 이것은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습니다.
19세기 전반의 자료는 이곳에 역대 국왕의 글과 글씨, 왕실족보, 의궤 등을 비롯한 6000여 권의 책이 보관돼 있었음을 증언합니다. 외규장각은 조선시대 왕실문화, 기록문화의 보고였던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 6년 1782년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이다.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 하였으며,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총 1000여권의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 프랑스넘들에게 359점을 약탈당했고,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외규장각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입니다.
외규장각은 정조 6년인 1782년에 설립하였어요. 1776년에 세운 규장각은 왕이 쓴 글과 왕실 관련 도서를 보관하던 왕립 도서관이었고, 외규장각에는 주로 역대 왕들의 글과 글씨, 어람용 의궤 및 주요 서적, 왕실 관련 물품 등을 보관했어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외규장각 의궤를 포함한 359권의 서적이 약탈되고 수천 권이 불에타 소실되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이후 프랑스 파리 국립 도서관에 외규장각 도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한국 정부는 이 도서들에 대한 반환을 추진해 왔어요. 그러나 프랑스는 2010년 3월, 한국 정부의 공식 요청에 5년 단위 갱신의 대여 방식으로 반환에 합의하였답니다.[네이버 지식백과] 외규장각 [外奎章閣] (천재학습백과 초등 사회 용어사전)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781년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습니다.
외규장각의 중요성이 프랑스인의 보존 능력이 아니라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수준 높은 제작 방식인 것입니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에 소장된 많은 자료들 중에서 유독 의궤류를 집중적으로 약탈해 간 것도, 의궤에 그려진 채색 그림의 가치와 예술성이 이방인의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즉, 조선시대의 어람용 의궤[御覽用 儀軌 : 왕이 열람한 후 국방상 안전지대로 파악되었던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내졌으며, 국왕이 친히 보는 만큼 사고(史庫) 등지에 보내는 일반 의궤보다 뛰어났는데,고급 초주지(草注紙)에다 사자관(寫字官)이 해서체로정성 들여 글씨를 써서 만들었는데, 붉은 괘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했습니다 ]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1975년 파리국립도서관의 촉탁 직원으로 일했던 박병선 박사가 발견하고 그 목록을 정리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화도 의 외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관련 주요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규장각을 세운것입니다.외규장각 이 새로 생겨 여러곳에 나누어 보관하였으나 병인양요 프랑스 인간들이 불태워 수천권이 소실되어 너무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외규장각(外奎章閣)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이다. 정조는 외규장각이 설치되자 원래의
규장각을 내규장각(內奎章閣, 내각)이라 하고, 각각의 규장각에 서적을
나누어 보관하도록 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안녕하세요. 석정숙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바깥 외, 별 규, 글 장, 집 각
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외규장각(外奎章閣)은 대한민국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건축물로, 1792년에 지어졌습니다. 외규장각은 조선 시대 왕족들이 수도인 한양에서 해외로 출항하기 전 잠시 머물며, 왕족의 출항식을 거행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건물은 나주향교의 교장인 이종건이 설계하고, 건축가인 김승연, 김도영 등이 건축하였으며, 당시의 건축 기술과 조선 시대의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 기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1985년 5월 8일 대한민국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외규장각(外圭場閣)은 대한민국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에 위치한 조선시대 건축물로, 조선의 유명한 문신인 정약용(鄭 硏佑)이 건축한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규장각은 정약용의 돌봉산서가(石峰山書房)와 함께 그가 퇴직 후 살던 곳 중 하나로, 그가 살던 시기인 1793년에 건축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조선식 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졌으며, 조선시대 문화와 예술에 대한 유물들과 문구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외규장각 내부에는 정약용의 서예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문화와 예술적 업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강화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외규장각이 위치한 조용한 분위기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외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화도의 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을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입니다. 정조는 외규장각이 설치되자 원래의 규장각을 내규장각이라 하고 각각의 규장각에 서적을 나누어 보관하도록 하였지요. 이후 병인양요(1866년) 당시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극동함대사령관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제독이 규장각을 불태워 전각이 소실되었습니다. 이 결과로 5천권 이상의 책이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340건의 책과 문서 및 의궤 수천 냥이 약탈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의궤 297권은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 건물은 강화군에서 2003년의 복원한 건축물입니다. 현재는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 대에는 일종의 학술정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정조는 유학에 조예가 깊어 대신들과의 논쟁에서 지는 법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조는 자신의 개혁정치를 위해 규장각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왕실도서관이며 학술연구 등을 하여 정조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도록 하였습니다.
외규장각은 규장각의 부속도서관으로 설립되었습니닺 1000여권 정도 소장하고 있었는데 왕실이나 국가행사를 그림으로 그린 의궤가 대다수였습니다. 병인양요가 일어나고 프랑스인들에 의해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당했습니다. 나머지는 불에 타 소실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