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 초기 장궁병과 기동전을 앞세운 영국군이 프랑스군에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영국은 재정 부담이 커지고, 국내 정치도 흔들려 점차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반면 잔다르크의 도움을 받은 샤를 7세가 왕위에 즉위하면서 상비군을 조직하고, 조세 체제를 정비하여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특히 잔다르크의 홀약은 프랑스 민심과 정통성을 크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전쟁 방식도 초기 기사 중심의 전투에서 포병, 공성전이 중요해고, 프랑스가 더 유리해졌습니다.
즉, 초반에는 영국군이 전술적으로 유리했으나 후반 프랑스는 민족주의 강화를 바탕으로 장기전에서 우위를 확대하여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