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서는 밀가루를 어떻게 공수해왔나요?
조선시대에는 밀이 상당히 비싼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밀은 존재하긴 했던데 어떻게 밀을 공수해왔으며 가격이 정확히 어느정도나 됬을지 쌀과 비교하여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밀이 귀해 밀가루 음식은 고려시대부터 궁중에서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취급되었으며, "잔치 때는 국수를 성찬으로 아는데, 밀가루가 부족하여 북경으로부터 수입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밀가루를 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하거나 국내에서 생산하여 사용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밀을 재배하여 밀가루를 생산하는 방법이 알려져 있었지만, 생산량이 부족하여 대부분의 밀가루는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밀은 보리와 함께 양맥이라 하여 이모작용으로 널리 재배되었고, 밀가루는 연자방아나 절구를 제분에 이용했으므로 밀의 대량 제분이 불가능했습니다.
쌀보다 귀해 양반들이나 왕족들만 즐길수 있었고, 사신들이 방문하는 시기, 혼례, 환갑 등의 집안 경사가 있는 날 밀가루를 이용해 만두, 면을 만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은 쑥대밭이 되었지만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밀 농사를 짓는 밀 생산국이었습니다. 재배역사도 기원전 2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안남도 대동군 미림리에서 발견된 밀의 연대가 그때쯤으로 추정됩니다. 남한에서도 경주 반월성지 부여의 부소산 군장터 유적에서 밀이 나왔습니다. 우리 밀 농사는 4세기를 전후해서 일본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밀은 흔한 작물은 아니었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모두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고려도경에는 밀은 화북지방에서 수입되며 밀가격이 너무 비싸 잔치 때 먹는다고 쓰여있습니다. 조선조에도 밀가루를 진가루라고 부르며 귀한 식재료 취급은 받았습니다. 근대 들어서면서 밀 생산량이 늘어났고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밀 생산량은 28만 8천톤 가량으로 지금 2만톤 내외에 비하면 매우 많은 양입니다. 이렇게 밀 생산량이 많아진 이유는 밀 소비도 많았지만 일제가 식량확보 차원에서 밀 농사를 강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외국산 밀의 수입으로 밀 가격 경쟁력은 상실하여 밀 농사를 짓지 않게 되었고 더군다나 1984년 전두환 정권에서 밀 수매를 중단함으로써 밀 생산은 곤두박질 치게 됩니다. 밀의 국내 자급율은 1%에 머물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