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엔트 공의회의 역활과 기능
로마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를 열어 교황의 권위와 교리를 재확인하고, 오랫동안 누적된 폐단을 시정하고자 했다는데 어떤식으로 재확인하고 시정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의 문제점들은 주교로 대표되는 고위성직자들은 사목(Cura animarum)보다는 권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가문으로 나뉘어 주 교좌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힘겨루기에 바빴고, 주교들은 지성적인 기준보다는 가문의 기준으로, 즉 족벌 체제의 결과로 임명되기 일쑤였지요. 하위 성직자들은 교육의 부족으로 가장 기본적인 미사, 찬송을 제외하고는 라틴어를 읽을 줄 모르는 신부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신부들은 술을 마시고, 혼인하지 않은 여자와 동거를 했으며 게다가 직업의 보상은 미진해 다른 직무를 겸직 해야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 신도들에게 가장 가까운 하위 성직자들이 무지했으니 신도들은 미신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면죄부를 구매하거나 왕/권력자를 위해 기도하면 가족이 연옥 에서 고통 받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둥 상황에 알맞게 교리를 번안 했지요. 이런 문제점을 일찍이 인지했던 몇몇 성직자들은 이미 각자 개혁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조치 들은 부분적이거나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바오로 3세를 비롯한 여러 교황들도 마냥 이런 문제들을 방관했던 것은 아니고, "교회를 바로잡기 위하여"라는 저작들을 출판하는 등 여러 방책 들을 강구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공의회는 대중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 성경을 따라 오늘과 같은 정경 목록을 재확인하고 불가타 공식 표준판 성경을 펴내기 위한 위원회를 출범 시켰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공의회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