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로맨틱한발발이142
로맨틱한발발이142

조선시대 박문수는 실제 암행어사 였나요?

제가 최근 들은 얘기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사 박문수'가 실제 암행어사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하던데요.

문신이자 정치가였던 박문수는 암행어사였을까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문수는 영조 대 소론계 당인이면서도 항상 공적인 입장을 우선시했던 인물이었다. 실무에도 밝아 국가의 재정이나 군사 부분 개혁을 주도하였다. 박문수의 암행어사 활동은 사실과 다소 간극이 있으나, 이변이 없는 한 아마도 그는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암행어사로 자리할 것이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국왕의 명으로 몰래 지방관을 감찰하고, 그들의 비리를 척결하던 관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암행어사는 백성들에게는 희망의 전도사였다. 오늘날에도 구전되는 각종 전설에 암행어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암행어사가 백성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춘향전]에서 춘향이 사또의 수청 문제로 생사를 오고 가는 순간에 극적으로 나타나 옛사랑을 구원하는 이몽룡도 암행어사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암행어사는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면 어디에선가 나타나서 이를 해결해줄 것 같은 백성들의 로망이었다. 조선시대에 많은 암행어사가 있었다. 그러나 유독 박문수는 암행어사의 대명사인양 말해지고 있다. 암행어사 하면 박문수요, 박문수 하면 암행어사로 대표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문수 [朴文秀] - 영원한 암행어사 (인물한국사, 이근호, 장선환)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암행어사 활동을 하긴 했습니다.

    암행어사로 활동한 시기는 1727년~1728년으로 1년에 불과하며 그 기간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 배경 지역을 생각하면 영남 첩보 목적으로 파견되었을 가능성이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조선 영조때의 암행어사 였다고 합니다.

    그가 과거시험을 보러 갈때 어머니께서 '용한 절에 가서 기도하고 가라, 가며서 찹쌀 유과를 먹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박문수가 과거시험 보러가기전에 기도했던 절이 안성 칠장사인데, 그 이후로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로 찹쌀떡을 먹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암행어사 박문수로 나오지 않고, 어사 박문수로 기록되어 있어 암행어사가 아니었다고 하는 설이 있는 가본데, 굳이 암행어사와 어사를 구별해서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