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영류왕은 당나라 침입에 대비해 부여성과 비사성에 이르는 곳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642년 연개소문의 정변으로 죽음을 당하고 보장왕이 등극하고 645년 양만춘과 연개소문이 안시성전투에서 승리하고난 뒤인 647년 연개소문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천리장성은 고려 초기에 여진족 등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은 성입니다. 11세기 초 거란족과 여진족의 군사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북쪽 변경에 쌓았습니다. 길이가 천리라고 해서 천리장성 또는 고려장성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