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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12.25

빵은 어떤 유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미국도 그렇고 유럽에서도 빵은 우리나라 밥처럼 주식인 나라들도 많은데 어떻게 해서 빵이 주식으로 되었는지 유래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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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2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빵은 영어의 브레드, 독일어 브로트, 네덜란드어 브로트 등에서 유래된 단어들이 그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 뺑, 이탈리아어 파네, 스페인어 파이, 포르투갈어 파이 등이 있는데, 이들은 라틴어 파니스에서 유래 되었다. 세상에는 브래드가 아닌 빵에 가 까운 발음으로 빵을 지칭하는 나라들이 꽤 있으며 포르투갈도 그 중 하나로, 포르투갈어 팡이 일본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까닭에 우리도 빵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달걀로 부풀려 만든 비스코초라는 빵이 있었으며 비스코초란 어원상 두 번 구운 것이라는 의미로 어원처럼 비스코초는 보존이 쉽도록 두 번 구워 딱딱해 진 빵입니다. 이후 비스코초는 밀가루, 달걀, 설탕을 사용해 구운 과자로 바뀌었고 당시 스페인의 수도원에서는 신자들을 위해 비스코초를 포함한 과자들을 만들었으며 15세기 후반 기록에는 이미 현재의 비스코초와 거의 같은 형 태의 레시피가 남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순히 말해서, 지역이 다르니까 주식도 다른 겁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쌀은 인구부양능력이 밀보다 더 좋은 대신 따뜻한 지역에서 물을 많이 써가며 조심히 길러야 하고

    밀은 부양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건조한 지역에서 대충길러도 그럭저럭 자랍니다.

    그래서 동양 대부분 나라는 정착해서 쌀과 각종 채소를 기르며 영양소를 채웠고

    물이 석회투성이인 서양은 밀을 기르면서, 그거만 가지곤 영양소가 부족하니까

    우유랑 고기가 나오는 가축을 더 열심히 길러서 먹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요리는 기름진 고기종류가 많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맛있는 것을 원하는게 본능이니

    동양은 물도 많겠다 살을 쪄서 먹다가 발전해서 밥이 된거고

    서양은 밀껍질을 까기 위해서 으깨 먹던게 발전해서 빵이 된거죠

    참고로 미국에선 쌀이 잘 자라는 지역도 있지만

    미국은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이 세운 나라라서 식생활도 유럽 따라한 겁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트랜스코카서스, 터키를 비롯한 그 인근 국가지역에서 생산되던 밀은 서남 아시아의 고원을 거쳐 이집트로 전달되게 됩니다. 이집트로 건너온 밀은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에 가까운 빵이 되었으며, 기원전 800년경 로마로 전파되었습니다. 로마에서도 제빵 기술은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이후 로마가 멸망하고 기독교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면서부터 제빵 기술 또한 유럽 각지로 퍼졌습니다 그러면서 빵이 주식ㄷ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빵의 유래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BC 3000년경 바빌로니아인들이 밀을 발효시켜 맥주를 만들면서 나온 발효된 밀가루 반죽을 구운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스트를 넣은 본격적인 빵이 만들어진 것은 BC 2000년경 이집트로, 고대 이집트의 회화와 조각품 중에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굽는 그림이 있으며, 당시의 사람들은 이집트인을 '빵을 먹는 사람'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돌과 벽돌로 만든 오늘날의 오븐과 같은 화덕이 있어 여기에 빵을 구웠으며 로마시대에 제빵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였는데 이는, 전리품으로 들여온 좋은 재료와 우수한 기술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는 말총으로 체를 만들어 고운 밀가루를 제조하고 설탕을 첨가하여 이스트의 작용을 상승시켜 잘 부푼 질 좋은 빵을 생산하였다. 따라서 빵 전문점(bakery)이 생기고 1세기경에는 제빵업자끼리의 조합이 결성되었다. 이후 로마제국이 붕괴되고 제빵 기술도 한때 쇠퇴하였으나 르네상스를 맞으며 다시 기술이 부활하여 질 좋은 빵을 만들게 되었다. 1683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안톤 판 레벤후크가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최초로 효모균의 존재를 확인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효모균의 분리 배양이 가능해졌다. 이후 19세기에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효모를 쉽게 배양하는 이스트가 만들어지면서 빵은 대중적인 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기계식 반죽기, 간접 가열식 오븐의 등장으로 대량생산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빵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조선 말엽으로 추정된다.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숯불을 피워 빵을 구웠는데, 빵의 모양이 우랑처럼 보인다 하여 우랑떡이라 하였다. 개화기에는 빵을 '면포'라 불렀는데, 이는 중국어로 빵을 의미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에는 일본식 빵이 유입되었다. 초기에는 일본인 위주로 빵 제조업이 이루어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인에게도 기술이 전수되며 조선인이 경영하는 제과업소도 등장하였다. 국내에 ‘빵’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 역시 식민지시기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18세기 일본에서 포르투갈어 ‘팡 드 로(Pão-de-ló)’을 ‘빵(パン)’이라 부르던 것이 그대로 정착한 것이다. 이 시기의 빵은 일제의 통제경제로 인한 원료 부족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소비되지는 못하였으나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며 원조물자로 밀가루, 분유, 설탕 등이 유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에는 분식 장려 운동이 전개되며 빵의 보급이 크게 증가하였고, 빵을 대량생산하는 업체와 소규모 제과점들이 성업하며 유명제과점들이 프렌차이즈 형태로 영업을 확대하였다. 1980~90년대에는 제과제빵 업체의 규모가 점차 대형화 되어 기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며 기능성 빵과 과자가 등장하고 각종 전문점 시장이 확대되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빵 소비량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발행한 《2018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빵류 시장》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1일 빵 섭취량은 2012년 18.2g에서 2016년 20.9g으로 5년간 14.8% 증가하였다. 85g 기준으로 보면 2016년 연간 빵 섭취량은 1인당 90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