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고려 문종 때 유학 성행과 최충의 문헌공도 등 사학 발달이 궁금해요

고려 유학의 발전 과정에서 최충이 설립한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크게 번성하면서 국립 교육 기관인 국학(국자감)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그 교육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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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문종 대는 동아시아가 비교적 안정되어 귀족 사회가 정착되었습니다. 문치주의적 통치와 유학 교육에 대한 수요도 커졌습니다. 과거는 문벌 귀족들의 관직 진출의 중요한 통로였으며, 교육이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국립 교육 기관인 국자감으로 교육적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명한 유학자들의 사학으로 학생들이 몰린 것이고, 최충의 문헌공도가 대표적입니다.

    최충은 은퇴 이후 자신의 집에 사숙을 열자 학생들이 몰려들었으며, 9재로 교육 과정을 세분화하였습니다. 이 학당은 그의 시호를 따 문헌공도라 하였습니다. 교육 내용은 과거 급제를 위한 구경·삼사 등 유교 경전과 역사서, 시부·제술 중심이었으며, 학생의 수준에 따라 재를 옮기는 승재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또한 여름철 하과를 열어 집중 학습과 글쓰기 훈련을 강화했습니다.

    문헌공도가 크게 성공하자 문종 전후의 고위 문신들이 제각기 사학을 세웠는데, 문헌공도를 포함하여 12도라 합니다. 사학 12도는 국자감과 거의 같은 유학 교육을 하면서도 과거 실적에 뛰어나 사실상 고려 중기 교육을 주도했습니다.

    사학이 융성하자 국자감이 위축되었습니다. 이에 국자감은 사학의 9재를 모방해 78재를 설치하고, 양현고를 두어 학생들의 재정을 마련하는 관학 진흥책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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