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개항과 더불어 개화 운동은 꾸준히 추진되었습니다. 특히 갑오, 을미 개혁으로 신분제가 붕괴되고, 인민평등권이 강죄되었습니다. 그리고 입헌군주제와 국민주권주의가 논의되었으며, 행정 기구 개편과 의회 제도와 같은 근대적 정치 체제 도입이 시도되었습니다.
또한 2차 갑오개혁으로 교육입국조서가 발표되며 근대적 교육 제도가 마련되었으며, 여러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여성의 지위 향상과 자유와 평등 등 민권 의식이 향상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식산 흥업으로 회사가 설립되고, 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조법 개혁 등 조세제도가 개혁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철도, 전화, 전신, 전차 등 근대 시설이 확충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 기득권의 반대, 외세의 간섭으로 반복적으로 좌절되었으며, 민중의 무지로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러일 전쟁 이후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면서 중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