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에는 성리학이 도입되어 신진 사대부를 형성하였고 목은 이색을 중심으로 성리학을 공부한 학자들은 조선 건국에 찬성하는 역성혁명파와 고려를 끝까지 지키고자 한 절의파로 나뉘게 됩니다. 절의파 중 포은 정몽주는 고려를 그대로 둔 상태로 내부개혁을 강하게 주장하자 이방원이 찾아가 하여가로 회유코자 한 것이며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화답하자 이방원은 정몽주의 회유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조선 건국의 걸림돌인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죽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