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 같은 신라의 고분은 왜 갑자기 나타난건가요?
황남대총 같은 신라의 고분은 왜 갑자기 나타난건가요?
갑자기 그런 거대한 고분들이 나타난게 굉장히 특이하다 생각해서 질문드립니다.
왜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크게 지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황남대총의 발굴은 1970년대에 이루어졌는데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관광개발사업이 지시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황남대총의 발굴을 지시하였어요.
황남대총은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덤이기 때문에 반드시국보급 유물이 출토될 것이고, 이를 이용해 관광업의 발전과 민족주의 고양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황남대총은 경주의 고분 중 가장 큰 규모이며, 남분과 북분 두 무덤을 연결한 쌍릉이에요. 규모가 더 큰 것이 북분이에요.
축조 당시에는 남분이 먼저 북분이 나중에 축조되었는데요, 발굴할 때는 나중 것을 먼저 발굴한다는 원칙이 있어 북분을 먼저 발굴하였다고 해요 북분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금관과 금제 허리띠가 발굴되었는데요, 당시에는 금관은 보통 남성(왕)이 썼기 때문에 피장자가 남성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인대라는 명문이 있어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도 있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쌍릉은 부부의 묘로 추측되기에 여성(왕비)이 묻힌 북분에서 금관이 나왔다면 남성(왕)이 묻혔을 남분에서도 반드시 금관이 나올 것이라생각했지만, 막상 남분을 발굴하니 금관보다 격이 낮은 유물들만 나왔다고 해요.
그리하여 왕비가 더 신분이 높은 부부의 무덤이라는 의견과 북분 역시 왕의 무덤으로 선후 왕이 같이 묻혔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고 해요.
결국 5세기 신라의 왕인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정도로 추정하는데 그중 눌지왕이 가장 유
력하다고 해요.
1명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