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만세운동을 할 때엔 일본경찰도 두고봤었나요?
일제강점기 3.1만세 운동은 일본측에서도 몰랐었다고 하던데요.
그럼 만세 운동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저지하지 않고 눈으로 보고만 있었나요?
이후 만세운동이 커지자 그제서야 폭력과 탄압을 행사한건가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한국인들이 만세 운동을 하는 것을 일본 정부가 완전히 무시하거나 눈을 감아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세 운동이 시작될 때, 당시의 일본 당국은 주의를 기울였고,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과 군대를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일본 당국이 운동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덜 강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운동이 확산되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일본 당국은 더 강력한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운동은 일본에 대한 저항이 강화되고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더 큰 규모로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당국은 운동을 진압하고 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처벌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운동은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확대되어 일제강점기 말기에 이르러서야 일본 당국과의 격렬한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경찰은 3.1운동에 단호하게 대응하였고, 학살과 억압을 통해 시위대를 진압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의 무단통치방법은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연히 두고보지 않았습니다
두고 봤으면 그냥 학생이던 유관순 열사님이 잡혀갈리가 없죠
처음엔 흔한 시위인줄 알고 눈에띄는 놈들 몇명만 잡아가서
자연스럽게 시위 해산 되기를 기다렸지만
이게 끝나지도 않고 전국적으로 커지니까 본격저긍로 무기 써가면서 때려잡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3.1운동은 3월 1일에 시작하여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도시에서 농촌으로 국내에서 국외로 확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구의 10%가 되는 200만명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가운데 일제의 잔혹한 탄압도 이어졌습니다. 조선총독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비무장 평화적 시위를 벌이는 군중에 무자비한 공격을 가했고 이에 전국에서 학살 투옥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일제는 화성 제암리 정주 합천 등지에서 잔혹한 집단학살을 저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