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츠담 회담은 1945년 7월17일~8월2일꺼지 독일 포츠담에서 열렸는데, 앞서 2월에 열린 얄타 회담에서 미.영.소는 독일 패전 이후 처리와 유럽의 국경 문제를 논의했지만 세부사항은 상당 부분 남겨져 있었고, 5월8일 독일이 항복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독일의 비무장화.비나치화.배상 문제.폴란드 국경과 동유럽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시 동맹이었던 미.소는 독일이 사라지자 서로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소련은 독일의 재침략을 막기 위해 동유럽을 완충지대로 확보하려 했고, 미.영은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했습니다.동시에 일본과의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아 일본의 항복과 소련의 대일전 참전 문제도 논의 됐습니다.
얄타가 전쟁이 끝나면 유럽울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한 자리였다면, 포츠담은 누가 전후 유럽과 세계의 주도권을 가질것인가룰 놓고 미.영 소가 본격적으로 충돌한 자리였고, 제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회담이면서 동시에 냉전시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38선 자체도 결국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으로 한반도 북쪽으로 빠르게 진격하자,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기 전에 미군이 일본군의 항복을 받을 구역을 급히 정해야 했눈데,미국이 38선을 제안하고 소련이 받아들였습니다.
당시에눈 임시 군사적 분할선이었지만, 훗날 냉전 때문에 정치적 분단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역사적 개연성으로 보면 포츠담에서 소련의 대일 참전을 막았다면 38선이 설정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겠지요.
하지만 일본의 항복 시점,미국의 한반도 진주 계획 등 다른 변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