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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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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금화도감은 어떤 방식으로 모집했나요?

조선시대에도 현재 소방청과 유사한 금화도감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금화도감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당시 포교들과 유사선상에 있는 신분이나 계급이었나요?

그리고 금화도감은 인원충원을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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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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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던한굴뚝새285
    모던한굴뚝새285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에 한양을 건설한 뒤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인접한 가옥과 가옥 사이에 방화장(防火墻)을 쌓고, 요소(要所)마다 우물을 파고 방화기기(防火器機) 등을 설치한 바 있다.

    1426년(세종 8) 2월에 화적(火賊)의 방화로 큰불이 일어나자, 곧 금화도감을 설치하여 화재의 방지와 개천과 하수구의 수리 및 소통을 담당하게 하고, 화재를 이용한 도적들을 색출하게 하였다. 관원은 제조(提調) 7인, 사(使) 5인, 부사(副使)·판관(判官) 각각 6인을 두었다.

    금화군은 정식대원이 아닌 군인이나 관청 노비들로 구성된 비상 대기조였습니다.

    1467년 세조때가 이르러 멸화군으로 이름이 바뀌고 더욱 전문화된 소방대원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정원은 50명이고 24시간 상시 대기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