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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은 세종대왕에게 어떠한 계기로 인정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장영실은 평민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어요.) 세종대왕에게 어떤 계기로 인정받았나요? 그리고 이후 세종대왕이 타던 전차(?) 같은 것에 사고가 난 뒤로 사실상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아는데 사실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추측이거나 낭설인지도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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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전하는 바로는 장영실은 부산 동래현의 관노비였다고 합니다.

    관노비시절부터 손재주가 남달라서 주위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동래현의 수령은 장영실을 수도에 인재 추천을 하게되고 세종에 의해 발탁되게 합니다.

    세종은 장영실의 기술을 높이 사 중국으로 유학까지 보내게 되고 장영실은 이런 세종의 기대에 부응하여 선진 기술과 문물을 익혀 자격루, 측우기, 혼천의, 앙부일구등의 발명품을 만들게 됩니다.

  • 장영실의 뛰어난 기술력과 재능 덕분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천문학과 과학 기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장영실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세종은 장영실을 중국에 보내 천문 관측 기구와 물시계의 원리를 배우게 했고, 이를 통해 장영실은 조선에 맞는 다양한 과학 기구들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어가(御駕)가 부서진 사건으로 1442년, 세종대왕이 타고 있던 가마가 부서져 그 책임을 물어 장영실이 실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