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단양은 전략적으로 요충지였습니다. 단양은 원래 백제의 세력권 아래 있다가 장수왕의 남하 정책에 의해 고구려가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진흥왕이 550년 공격하여 차지하였습니다. 단양의 확보가 한반도의 세력 다툼에서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 사례로 신라가 적성에서 고구려 군대를 몰아내자 진흥왕이 기뻐하고 공을 세운 사람들을 칭찬한다는 내요의 비석을 세우게 했습니다.(단양 적성비) 고구려도 단양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었습니다. 고구려는 단양을 수복하기 위해 590년 온달 장군이 영양왕에게 건의하여 직접 출정하여 신라가 차지한 야단성(단양군 / 또는 경기도 구리시 )을 공격하다 전사합니다.
단양이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인 이유는 소백산맥의 조령을 넘으면 경상도(신라)로 곧바로 향할 수 있고, 반대로 남한강을 따라 한성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지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