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후전투 당시 누르하치가 이끄는 팔기군의 위용이 그렇게 대단했나요?
궁금한 부분이 사르후대전 당시 명의 군대는 10만
이었습니다. 4부대로 나누어 사방에서 공격한것은
나쁘지 않은 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4개의 부대로 나누었어도 한곳에 적어도 2만 이상의
군대가 있었습니다. 후금의 팔기군이 아무리 강했어도 4곳에서 오는적을 각개격파로 공격하여 섬멸했다는 것은 정말 체력적인 면에서 대단한것 같고 가능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당시 명과
조선은 동북아지역에서 대포를 사용하고 조선은
조총부대를 파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무너졌는지 궁금합니다. 화력면에서는 적의
기병을 압도했을 것이고 명도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기마병이 주축으로 된 부대로
알고 있고 조선도 아직 함경도 일대 부대들은 기병이
주축이 되어 있었을 텐데 이들은 참전을 안시키고
넓은 평원에 삼수병 편제로 군을 보낸 조선군은
어떤 전략이었는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이부분이 좀 궁금해서 전문가분들의 고견 부탁드립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참 재미 있는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최강의 기병인 팔기군은 화살과 화승총 탄환도 막는 두꺼운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병으로 1명의 팔기군이 1000명의 허약한 짱개병사들을 격파할 정도니 그 전투력이 대단했습니다.
청군이 크게 대패한 전투는 베트남과 미얀마 원정 밖에 없구요. 그외의 전투에서는 확실히 큰 효과를 봤습니다.
같은 유목국가인 북원이나 준가르제국을 팔기군과 화약무기로 물리치고 약소국 조선을 가볍게 굴복시켰는데 300명의 팔기기병이 4만의 조선군을 아작냈으며 어떤 전투에서는 청군 사망자 2명에 조선군 전원 전멸도 있었습니다.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르후전투 당시 나주파 팔기군이 보여준 위용은 역사서술에 따라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팔기군은 전투에서 뛰어난 전투 기술과 위엄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팔기군이 기마병에 대한 대응이 미숙했고, 명군의 대규모 기마병에 대해 대처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르후전투 당시 명군의 규모는 대략 10만 명이었고, 팔기군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군대였습니다. 하지만 팔기군은 명군보다 전투 기술과 전장에서의 경험이 더 많았습니다. 또한 팔기군은 명군의 공격을 예측하여 사방에서 대비할 수 있는 방어 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 이러한 전략으로 인해 명군도 전투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사르후전투 당시 조선군은 대포를 사용하였으며, 명군도 대규모 기마병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군이 대포를 사용함으로써 명군의 기마병을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군은 명군의 기마병을 상대하기 위해 창끝에 철쇄를 달아서 나가는 철쇄창술을 사용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르후전투 당시 조선군은 평양에서부터 넓은 평원 지역에 이르는 지역을 다수 점거하고 있었고, 이 지역에서 명군에 대한 대비 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 팔기군은 이러한 전략을 통해 명군의 공격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