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청조는 혁명의 진압 과정에서 위안스카이를 총리대신으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중국민국의 쑨원과 협상을 진행하였으며, 쑨원과 중화민국은 위안스카이에게 청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선포하는 대신 총통 자리를 물려준다는 쑨원의 제안을 받습니다.
결국 1912년 중화민국이 수립되면서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가 퇴위하는 과정에서 합의합니다. 즉 푸이는 황제의 지위를 포기하는 대가로 중화민국 정부로 부터 일정한 예우와 경제적 보상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