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김치문화는 언제부터 있었나요

우리나라김치문화는 언제부터 있었나요 일본이나 중국이 모두 김치문화는 본인들 나라가 시초라고하는데 언제부터 김치를 담궈 먹었나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중국: 기원전 1000년경 (약 3000년 전)>

    중국이 "우리가 시초"라고 주장하는 시기는 고대 주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 기록: 중국의 시집인 《시경》(기원전 1000년경)에 "저"라는 글자가 등장합니다.

    음식의 실체: 오이나 배추 같은 채소를 소금물이나 식초에 담가 만드는 '파오차이' 형태입니다. 중국은 이 문헌을 근거로 "채소를 절여 먹는 인류 최초의 기술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팩트 체크: 소금물에 채소를 절여 장기 보관하는 '염장 기술'은 고대 문명권(피클, 사우어크라우트 등)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파오차이는 유산균에 의해 저온 발효되는 한국 김치와 달리, 초산이나 소금물에 그냥 '담가두는' 초절임(피클)에 가깝습니다.

    <대한민국: 삼국시대 ~ 조선시대 (약 1500년 전 ~ 250~300년 전)>

    한국은 채소 절임이라는 원시적 형태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발효 과학 제품인 김치'의 진화 과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기원후 3~7세기): 중국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289년)에 "고구려인은 발효 음식을 매우 잘 만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백제 미륵사지 유적에서 거대한 김장독용 토기가 출토되면서, 이때 이미 겨울철 채소 저장용 발효 기술이 정착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당시엔 고추 없이 소금, 소금물에만 절인 흰 짠지 형태였습니다.)

    고려시대 (13세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무로 김치(동치미)를 담근다는 기록과 함께 '침채'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합니다. 이 침채가 '팀채 - 딤채 - 김채 - 김치'로 어원이 변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18세기): 임진왜란 이후 도입된 고추가 김치에 적극적으로 쓰이기 시작하고 마늘, 생강, 젓갈과 결합하면서 양념이 미생물과 만나 폭발적인 유산균을 만들어내는 붉고 매콤한 '세계 유일의 복합 발효 김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일본: 1980년대 후반 (약 40~50년 전)>

    일본은 역사적으로 '김치가 우리 손에서 시작됐다'는 황당한 종주국 주장을 펼치지는 않습니다. 대신 "상업적·현대적 시초"를 자신들이 열었다고 주장했던 적이 있습니다.

    등장 배경: 일본은 전통적으로 채소를 가볍게 소금이나 절임 소스에 절여 먹는 '쓰케모노'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1980~1990년대 한국 김치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자, 이를 모방해 '기무치'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장의 실체: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당시, 일본은 "한국 김치는 매운맛과 냄새가 강해 서양인이 먹기 힘들다. 인공 감미료를 넣어 덜 맵고 아삭하게 만든 일본식 '기무치'를 세계 표준으로 지정하자"며 국제기구에 로비를 벌였습니다.

    팩트 체크: 발효 없이 겉에 양념(미투 소스)만 발라 만든 기무치는 한국 김치와 아예 다른 가짜 식품이었습니다. 결국 5년간의 논쟁 끝에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고춧가루와 젓갈을 넣어 '젖산 발효'를 시키는 한국식 김치(Kimchi)만을 공식 국제 표준으로 인정하면서 일본의 시도는 무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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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우리나라 김치 문화는 삼국시대부터 겨울철 채소 보관을 위한 원시적 절임 형태로 시작되었고, 고려시대에 젓갈과 양념이 결합하고, 조선시대에 고추가 도입되며 오늘날의 빨간 김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중국의 파오차이나 일본의 아사즈케는 단순 소금 절임일 뿐이며, 갖은 양념과 젓갈로 유산균을 자연 발효시키는 김치 문화의 시초는 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