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적서차별의 장점과 단점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 적서차별이 상당히 심한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 적서 차별로 인한 장점과 단점은 어떤것들이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적서 제도는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적자와 서자를 차별 구분하는 사회 제도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두 명의 정실 부인 외에 첩을 두고 서자를 두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서자를 적자와 다른 존재로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종 때였다.
태조 이성계는 개국에 막대한 공을 세운 방원을 비롯한 본 부인 한씨의 자식들을 제외하고 계비 강씨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삼았다.이에 정안대군 이방원은 불만을 품고 세자인 방석과 그 옹호 세력인 서얼 출신의 정도전 등을 힘으로 몰아냈다.
이방원은 둘째 형 영안대군 이방과를 왕으로 앉히면서, 그 교지에 ‘간신 정도전 등이 서얼을 세워 후사를 삼아 어른과 아이의 차례를 뒤엎고 적서의 구분을 어지럽히려 하였다’(태조실록 15년 9월 정해 조)라고 쓰게 하였다. 이것이 적, 서를 구분 지은 최초의 기록이다. 이방원은 “적서의 구분을 분명히 하였다”라고 공언하였고, 방석 형제를 서얼이라고 불렀다. 즉위 후, 태종은 서자들의 관직 임용 자체를 제한했는데 이때 만들어진 서자 차별 규정은 1894년까지 지속된다.
출처: 위키백과 적서제도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 문중의 가장 큰 갈등 중의 하나는 적서(嫡庶)의 문제였다. 사실 이 적서의 문제는 문중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선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자(庶子)와 얼자(孽子)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과 관계없이 서얼차대법(庶孼差待法)에 의해 아예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관리로 등용될 수 있는 길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출처:우리역사넷